을유년(乙酉年) 새해는 경제전망이 그리 밝지않은데다 기업경영을 압박할 수 있는 새로운 변수들도 많아 재계로선 어느해보다도 힘든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벽두부터 시행되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출자총액제한제도 졸업기준 변화, 지배구조 개선 압력 등 여러요인들이 경영자원을 분산시켜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환율급락, 원자재가격 상승 등 기업경영과 직결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소송이나 의결권 지분확보 등 경영외적 요인에매달려야 한다는 점 때문에 걱정 속에서 새해를 맞고있다. ◆집단소송 봇물이루나 = 기업들은 내년 1월부터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본격시행되면 남소(濫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해 내년 7-8월께부터 집단소송이줄을 이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재계의 건의를 수용, 과거분식에 대해 3년간 집단소송을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는 생기지만 그렇다고 집단소송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소액주주가 50명 이상이고 발행주식의 1만분의1(0.01%)만 확보하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더구나 회계나 공시기준이 모호해 뜻하지 않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데다 남소장치가 부족하고, 손해 인과관계및 손해액 입증책임이 피고측에 있는 등 피고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돼있어 삼성을비롯한 주요그룹들은 법무실 인원을 보강하는 것 이외에 이렇다할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는 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 주총장의 '총회꾼' 처럼 기업을 협박하고 흥정해돈을 뜯어내는 '소송꾼'이 생겨나는 것은 필연일 것으로 보고있다. 집단소송에 관한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소한 것이라도 꼬투리가 잡혀 소송이 제기되면 재판에서 승소하더라도 대외신인도 추락을 피할 수 없기때문에 원고측과 화해에 나설 수 밖에 없고 이를 노리는 소송꾼이 등장할 수 밖에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집단소송제 도입 모델이 된 미국의 경우 지난 90-94년에 연평균 200여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됐으나 이 중 95% 이상이 최종판결까지 가지않고 중간에 합의로종결됐으며, 로펌에 의한 표적소송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출총제 새 졸업기준 '희비' = 내년 4월께부터 시행될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출총제 졸업기준에 지주회사, 지배구조 모범 기업집단 등 4개 기준이 추가되는대신 기존 '부채비율 100% 미만' 졸업기준은 폐지될 방침이어서 재무구조 우량기업으로 분류돼 출총제를 적용받지 않아온 일부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부채비율 100% 미만 졸업기준이 폐지되면 삼성과 한국전력, 포스코, 한국도로공사, 롯데 등 5개 기업집단이 새로 출총제 적용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중 포스코와 도로공사는 각각 지배구조 모범기업, 계열사 수 5개 이하인 기업집단 등 새 졸업기준을 충족해 삼성과 한국전력, 롯데 등 3곳이 출총제 적용 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들 그룹의 계열사들로선 출총제 대상기업으로 편입됨으로써 자산의 25% 이상계열사 출자를 금지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됐다. 재계에서는 개정 공정거래법에도 '재무구조기준'을 감안해 출자규제를 적용하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에서 부채비율 100% 미만 졸업기준을 시행 2년만에 폐지하는 것은 시행령이 법률을 위배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만큼 제도폐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부채비율 100% 미만 기준이 폐지되는 대신 새로 추가되는 4개 졸업기준에 따라포스코와 도로공사 이외에 LG, LG전선, 신세계, 현대중공업, 주택공사, 토지공사,가스공사 등은 출총제의 족쇄를 벗는다. 재계에서는 출총제가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다는 법취지와 달리 국내 대기업의 글로벌기업 도약 기회를 박탈하는 대표적 규제로 지목해 줄기차게 폐지를 요구해 왔다. 실제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인 A그룹의 경우 수천억원대의 현금을 확보하고 인수합병(M&A) 매물기업 인수를 추진 중이지만 내년부터 출총제 대상 기업으로 편입될예정이어서 경영전략에 차질을 빚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지배구조 혼선빚나 = 재계 1위인 삼성그룹으로선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편입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새해가 그룹지배구조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기로가 될 수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를 비롯한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최대주주(지분율 31.9%)로 있는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구축해 놓고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삼성에버랜드의 금융 자회사 주식평가액이 총자산의 50%를 넘어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되면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하고 자회사는 유사업종이 아닌 손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게 돼 기존 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밖에 없게돼있다. 삼성에버랜드 자산 중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자회사 주식 평가액이 지난 9월말 현재 1조5천469억원으로 총자산 3조999억원의 49.9%에 달한 상황에서 삼성생명의실적호조가 지속되면서 주식평가액이 크게 올라 연말결산이 이뤄지면 금융자회사 지분이 50%를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때문에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보유주식 19.34% 중 6%(120만주)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고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묘책'으로 금융지주회사 시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 편입을 피하기 위한 주식신탁이 처음이어서 법률적검토가 필요하다며 일단은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부정적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으로서는 공정위가 주식신탁을 인정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엄청난 경영자원을 쏟아가며 지배구조 수술에 나서거나 또다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엄남석기자 eomn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