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대 총선은 한국 정당정치사에 기념비적인사건을 남겼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노동계와 서민의 권익을 앞세운 진보정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한 것. 지난 2000년 노동계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며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마침내 숙원인 여의도입성의 꿈을 이뤘다. 민노당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 2명과 비례대표 8명을 합작해 모두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함으로써, 원내정당 원년에 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이어 제3당으로 일약발돋움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교섭단체 구성에는 실패했지만 창당 첫해 도전에 나선 16대 총선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던 참담한 패배를 감안하면, 불과 4년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와도같은 대약진을 이룬 것이다. 국내 진보정당사에서 민노당의 원내진출은 1960년 이후 44년만에 진정한 의미의진보정당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다는 정치사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레드 콤플렉스'와 좌파에 대한 `편견과 알레르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우리 사회가 비로소 좌우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토양을 구축했다는게 정치학자들의 평가이다. 진보정당의 역사는 56년 정.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봉암 후보 중심의 진보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 4.19 이후에는 당시 혁신적 사회분위기를 타고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 진보를 표방한 정당이 대거 등장해 원내 진출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진보정당은 분파대립 등 한계를 드러낸 채 5.16 쿠데타와 함께 몰락했고, 87년 6월 민주항쟁이 있기 전까지 긴 `암흑기'를 맞기도 했다. 6월 항쟁 직후 13대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를 지지한 진보진영은 민중의 당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해 진보정당 운동을 재점화했고, 90년대 들어 노동운동의 본격화와 함께 민중당, 한국노동당, 사회당 등이 자생하는 등 진보정당 활동은 활기를 되찾았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정당이 바로 97년 창당된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이다. 국민승리 21은 97년 대선에서 권영길(權永吉) 민노총 위원장을 후보로 세워 29만여표(1.3%)를 얻었고, 2000년 민주노동당으로 재창당해 치른 16대 총선에선 경남창원을과 울산 북구에서 당선자를 기대했으나 간발의 차로 낙선, 원내진입의 꿈을 4년 후로 미뤄야 했다. 2002년 대선에서 3.9%인 96만여표를 얻어 대중적 기반을 넓힌 민노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123곳에 후보를 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0% 이상의 지지도를 보인끝에 원내 진출의 숙원을 이뤄냈다. 이처럼 긴 세월 각고의 노력 끝에 입성한 국회였지만 민노당의 이상과 정치권의현실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민노당은 경제, 노동 등 각 분야에서 `부유세 도입'처럼 뚜렷이 차별화된 정책을 내세우고 정치 개혁 작업에도 힘쓰면서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실제 자신들의 정책을 입법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커다란 벽에 부딪혀야 했다. 기성정당과의 시각차와 자신들의 경험부족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소수당으로서는 교섭단체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회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던 탓도 컸다. 민노당은 이처럼 무기력함을 드러낸 데 대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결국 민노당은 예전처럼 거리로 뛰쳐나가 단식과 농성 등 원외 투쟁을 재연했고, 이 과정에서경찰 등 정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와 함께 원내와 원외 지도부가 분리된데 따른 의사결정구조의 `비생산성'과진보정당의 전통적 약점인 노선 갈등 문제 등은 제도권에 진입한 민노당이 조속히해결해야 할 과제로 따라다녔다. 민노당은 그러나 처음 치른 가을 국정감사에서 내실있는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를 각계로부터 받았고, 각종 의정활동에 성실히 임하는 모습으로 기존 지지층이 아닌 국민에게도 나름대로 좋은 이미지를 전달, 어느 정도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혔다. 우리 사회의 주류에서 비켜나 있던 노동자와 농민 등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적극대변하면서 기성정당이 하기 힘든 역할을 대신했다는 점이 어필한 것이다. 원내진출 원년을 제도권 적응기의 수업료로 삼은 민노당이 창당 이후 꾸준히 준비해온 진보정책을 부분적이라도 실현할 지, 아니면 현실적 대안없는 진보 일변도의목소리로 자신들의 한계안에 머물지, 진보정치는 내년에도 시험대에 오른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