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을 통해 과반수 거대 여당으로 탈바꿈한 열린우리당의 `혼돈'은 2004년 내내 정치면을 장식한 단골 이슈였다. 여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에 힘입어 47석의 원내 3당에서152석의 과반 1당으로 몸집을 불리는 데 성공했지만, 108명에 이르는 초선 의원들의분출하는 `개성'을 통제하지 못한 채 표류를 거듭했다. 미증유의 원내.정책정당화 실험이 본격화되면서 과거 일사불란을 요구했던 정치.정책적 결정 과정에서 백가쟁명이란 공식이 적용됐고, 결국 결론 없이 논쟁만 벌이는 지리멸렬한 상황은 지루하게 반복됐다. 이는 그러나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공천권,정치자금, 검찰권 등 과거 `대통령 겸 당총재'가 가졌던 당 장악 수단을 포기하면서`상하' 간에 채권.채무 관계가 사라진 데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검찰식 상명하복 등 과거 정권의 일방통행식 관행을 접고 합리적 파트너십내지 수평적 협력관계로 가야한다는 여당내 목소리와 함께 검찰의 성역 없는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정치자금의 관행이 사라진 달라진 정치환경도 이같은 혁명적 변화를가능케 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같이 당.청관계가 바로 서게 된 바탕에는 물론 노 대통령의 노력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기각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정무수석실을 폐지하는 등 당 통제의 `유혹'을 스스로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사실 여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거리두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대통령의최측근으로 불리던 청와대 386 인사들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역차별을 느낄 만큼 엄격한 잣대에 시달린 것은 청와대의 불간섭 원칙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당정협력과 당정분리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는 상당한진통이 수반됐다. 6월초 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차기총리감으로 내세웠던 김혁규(金爀珪) 경남지사가 여당 의원들의 반발로 중도 하차한 데 이어 초.재선 소장파들로부터 `총독'이란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던 문희상(文喜相) 의원이 대통령 정치특보직에서 해촉되는 등 심심찮게 당청간에 갈등 기류가 표출됐다. 노 대통령은 특히 그 과정에서 "당도 가급적이면 청와대 운영에 관해 불필요한논란이나 간섭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당부할 만큼, 당은 과거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던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를 만끽했다. 대통령의 뜻에 반기를 드는, 불과 지난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상황도 잇따라 발생했다.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 이의 대표적 사례다. 노 대통령이 6월9일 민주노동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당이 내 소신을 모르고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며 "분양원가공개가 개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기가 무섭게, 당시 신기남(辛基南) 의장과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뜻이 당론이 아니다"며 고개를 처들었다. 김근태(金槿泰) 의원의 경우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변화된 시대에서 기존의 당.청 관계 역시 당연히 변화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서장에서 전대협 의장까지 다양한 출신 배경 등에 따라 이념적 스펙트럼이 보수에서 진보까지 각양각색인 여당의 현실은 때때로 집권여당 고유의 역할수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름 정국을 뜨겁게 달군 이라크파병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 의원들이 가장 많이반대해 `참여정부를 뒷받침하는 책임 있는 여당'이란 구호를 무색케할 정도였다. 특히 당지도부마저 선명개혁을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에 눌려 이념적 문제에관심을 두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민심을 바로읽지 못하고 당력을 민생현안 해결에 결집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은 자율성을 보장받았지만 그 시스템 자체는 비효율적이란 지적도 숱하게 제기됐다.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는 안건도 의원총회란 총의를 모으는 시스템에 막혀미뤄지거나 불필요한 논쟁을 유발한 사례가 속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의장과 원내대표의 장악력도 예전보다 못해 하루가 멀다하고 성명과 결의문이 잇따르는 등 리더십이 내부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이같은 시행착오를 반성하기라도 하듯 우리당은 총리와 관계장관이 참석하는 고위당정청회의와 당 수뇌부 회동 같은 공식.비공식 협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동하는등 정치.정책 혼선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여당의 혼선이 현재진행형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 공천과 대선경선 레이스의 향배를 가늠할 내년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계파간의 당권경쟁 심리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념적 정책 공방과맞물릴 경우 의원총회가 민생대책의 장이 아닌 노선투쟁의 무대로 변질될 수 있다는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년간 아노미 상태 속에서 청와대의 입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여당으로서는 이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당운영 시스템을 강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