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과 그 여파 속에 치러진 4.15총선을 통한 의회권력의 교체는 2004년의 정치를 특징짓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처음으로 공식 언급된 것은 지난 1월5일 민주당 중앙상임위원회의 석상에서 조순형(趙舜衡) 당시 민주당 대표의 입을 통해서였다. 조 대표의 발언은 지난해 11월11일 열린우리당이 47석의 소수여당으로 출범한이후 노 대통령이 몇 차례 `친정'인 민주당을 `반개혁세력'으로 지칭하면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데 대한 경고성 메시지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불법 관권선거'라고규정해 점차 공세의 수위를 높여갔고, 마침내 2월4일과 5일 잇따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 나선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 대통령이 불법 관권선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탄핵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월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두 야당의 탄핵 공세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중앙선관위는 3월3일 노 대통령이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언급한 열린우리당 지지 촉구 발언에 대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야당이 탄핵을 발의할 수 있는 법률적 빌미를 제공했다. 정치적 수사로만 거론되던 대통령 탄핵이 마침내 법률적인 궤도 위에 오른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3월9일 국회에 탄핵소추안을 제출한뒤 선거개입 발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으나,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마침내 `운명의 날'인 3월12일 오전 11시55분.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열린우리당의원들을 박관용(朴寬用) 당시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강제로 퇴장시킨 가운데 야당 의원들이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탄핵 이후 정국은 야당의 의도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시청과 광화문등 도심의 거리는 연일 탄핵안을 강행 처리한 야당을 성토하고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촛불시위대로 넘쳐났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한 `탄핵 심판론'에 당황하며 극도로 위축됐고, 열린우리당은 `탄핵풍'을 타고 가파른 지지율 상승을보였다. 17대 총선이 치러진 4월15일. 투표함을 열자 놀라운 결과가 튀어나왔다. 47석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은 일약 152석의 원내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거뒀고, 한나라당은 121석의 제2당으로 전락했으며, 민주당은 교섭단체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9석의 군소정당으로 추락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의 첫 원내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하면서 10석의 원내 3당으로 도약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정당이 원내 다수를 차지하는 의회권력의 교체가 이뤄졌고, 제12대 국회 이후 16년만에 처음으로 집권여당이 국회를 주도하는 `여대야소(與大野小)'의 정국구도가 형성됐다. 모두 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초선의원이 3분의 2선인 187명에 달하는 급격한세대 교체가 이뤄진 가운데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도부는 대부분 생환하지 못했다.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채 쓸쓸한 봄을 지샜던 노 대통령은 5월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으로 당당하게 직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45%에 달하는 지지율과 152석에 달하는 의석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국회에서 개혁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백팔번뇌'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여당 초선의원 108명의 서투른 정치실험과 개혁 우선순위와 방향 등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혼선, 정교한 전략의 부재, 한나라당의 발목잡기 등이 겹치면서 17대 국회는 `상생'의 화두를 놓쳤고, 이전의 국회보다하등 나을 것이 없는 빈약한 생산력을 보였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총선 직후 45%를 넘나들던 높은 지지율이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 10%대의 지지율로 추락하는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 열린우리당에는 강성 야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면서 정국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민생경제에 집중하는 겸손한 자세가, 한나라당에는 소수 야당으로서의 현실적위치를 인정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통해 관철시키려는 방향의 전환이 새해의 숙제로 주어져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