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을 바라보는 집권여당의속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4대 입법'을 비롯한 각종 민생개혁 법안 처리를 위해 하루속히 본회의를 열어달라는 여당의 애타는 요구에 꿈쩍도 않기 때문이다. 세칭 `지둘러 행보'의 결정판인 셈이다. "국보법을 연내 폐지하라"는 재야.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아우성 속에서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14일 김 의장을 찾아갔지만 헛걸음이었다. 천 원내대표는 그 자리에서 국회운영과 관련해 강력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법사위 점거사태 등 의회주의에 대한 한나라당의 폭거를 더 이상 지켜봐서 안된다는 항의성 메시지였다. 하지만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 의장은 그저 듣기만 했다. 여야간의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다시 강조하면서 "마지막까지 노력해 봐야지"라며 인내를 당부하는 것으로 천 원내대표를 돌려보냈다는 후문이다. 김기만(金基萬) 의장공보수석은 15일 "혹시나 해서 어젯밤에도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여쭤봤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기만 했다"고 전했다. "끝까지 기다리자"는 김 의장의 자세에 여당내 불만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안을 우선 처리하고 곧바로 연기금 관련 법안과 4대 법안을 연내 처리한다는 `3단계 처리안'이니 아예 거사일을 잡아 쟁점법안을 일괄처리한다는 `동시처리안' 등 각종 본회의 대책 시나리오가 이른바 `고위 관계자'의 입을통해 일부 언론에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으나 현재로선 `희망사항'일 뿐이다. 김 의장이 본회의 사회를 보지 않으면 모든게 탁상공론에 그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친정'을 내려다보는 김 의장의 답답한 시선도 여당으로선 부담이다. 노태우(盧泰愚) 정부 때 평민당 원내총무를 지내며 `중간평가 유보' 등 막후에서 숱한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협상의 명수'로 명성을 떨친 김 의장으로선여당 지도부의 모습이 성에 안차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민주당 탈당 후 40여석에 불과한 초미니 여당을 가지고 재적의원 3분의2의석을 점한 거대 야당 연합과 맞섰던 김 의장이다. 그는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부대를 전격 방문하고 귀국한지난 9일 여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파병연장동의안에 대한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동의안 처리가 무산되자 역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의장의 인내는 거의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김 의장이 직접 제안한 `4대 법안 합의처리' 약속을 받지않고 있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끊임없는 의심과 엉거주춤한 행보에 대해 매우 곤혹스럽고 화가 나 있다는게 의장실 안팎의 전언이다. 따라서 적어도 파병연장동의안과 예산안만큼은 이와 관련해 본회의 소집을 요구한 여당의 뜻에 따르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파병안과 예산안은 지금 당장은 아니나 올해를 넘길 수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