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올해 대학가 총학생회장 선거는 비운동권이 강세를 보인 가운데 여성 후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불황으로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은 이념이나 정치적 이슈보다학생복지 등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을 내놓은 후보들을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운동권'으로 불리는 학생회장 후보들도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학생들이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공약을 내놓아 학생들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 학생회장 당선자들은 그러나 대학 총학생회를 `운동권 대 비운동권'처럼 이분법적으로 봐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 여성 약진 = 서울대에서는 민중민주(PD) 계열의 정화(본명 류정화.22)씨가개교 이래 첫 여성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정화씨는 2년간 총학생회를 이끈 비운동권 `학교로' 선거운동본부를 10% 포인트차로 여유있게 누르고 당선했다. 정화씨는 당선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총학생회장 당선 자체가 여성 지위의 향상은 아니다"며 "대표자가 여성이라는 것과 별개로 앞으로 양성평등을위해 적극 활동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원대에서도 식물응용학과 4학년 양인경씨가 상대후보를 1천여표 차로 따돌리고 개교 57년만에 첫 여성 총학생회장이 됐다. 숭실대에서도 강주혜.오미혜씨 등 여학생 2명이 각각 정.부 총학생회장 후보로단독 출마해 80%가 넘는 지지율로 학생회를 장악했으며, 진주교대.장신대.한동대.인천대 등에서도 여학생이 총학생회장으로 뽑혔다. ◆ `비운동권' 꾸준히 강세 = 서강대에서는 지난달 선거에서 1970년 총학생회가구성된 이래 처음으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됐다. 이 대학 총학생회를 이끌게 된 김태진.김상균씨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탈퇴를 공약으로 내걸어 관심을 모았었다. 이들은 선후배간 멘토링(후견인제) 도입, 독서인증제, 학교발전위 구성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도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탄생했다. 선거기간 `탈정치 작은 총학'을 구호로 내건 연세대 윤한울(23.정외4) 총학생회장은 `도서관 앞 집회 등 행사 전면 철폐와 정치투쟁 거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윤씨는 다른 선거운동본부보다 훨씬 적은 180만원으로 모든 선거비용을 충당했고 공약대로 도서관 학습권을 침해하는 도서관앞 유세에도 불참해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에 당선한 `Ewha Dream' 김세희(성악4).강선희(생물4)씨도역시 비운동권으로 `학점포기제' 등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공약을 선보였다. 지난해 한총련 의장을 배출한 한국외국어대에서도 비운동권 후보가 64.2%의 비교적 높은 득표율로 운동권 후보를 제치고 총학생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밖에 국민대.세종대.충남대 등도 비운동권 후보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 운동권.비운동권 구분 무의미 = 학생회장에 당선된 후보들은 시대가 달라진만큼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시대흐름에 따라 무척 다양해진 만큼 운동권 총학생회라고해도 학생복지나 취업문제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서울대 총학생회장 정화씨는 "이제 학생사회에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은무의미하다"며 "학생들이 함께 모여 뭔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일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김노진(21)씨는 한총련 계열이지만 청년실업 극복과 같은 학내 가로등 추가설치, 점등시간 연장, 주차문제 해결과 같은 학내 환경개선도 공약집에 포함했다. 고려대 유병문 총학생회장도 정치성 짙은 공약보다 교양학점 폐지와 백주년 기념 도서관 건립 등 학생들의 학습환경 개선 노력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국외대 서반아어과 민선재 교수는 "비운동권의 약진은 전반적으로 학생운동의변화를 의미한다"며 "70∼80년대처럼 마땅한 이슈가 없을 뿐더러 학생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여학생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는 것을 여권신장의 측면에서 볼 수도있겠지만 아직까지 남학생들이 취업에 대한 부담을 더 느껴 학생운동에 대한 활동에부담을 느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양정우 기자 eyebrow76@yna.co.kr ejlov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