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4:47
수정2006.04.02 14:51
임도빈 < 서울대 교수ㆍ행정학 >
과연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고위 공직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마술방망이'가 될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물론 행정부엔 문제있는 관료들이 있고 제도 개선의 여지도 많다. 많은 경우 관료들의 문제는 역대 정치인들이 관료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온 데서 비롯되고 있다.1829년 미국 잭슨 대통령이 주장한 엽관제와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엽관제란 공직을 전리품과 같이 생각,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한다.미국에선 엽관제 폐단을 인식하고 1883년 공무원 신분을 보호하는 실적제를 천명했다.
다행히 한국은 미국과 같은 대대적인 엽관제는 경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공직사회가 회오리 바람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고위공무원은 정치와 행정의 연결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와 단절돼 업무수행을 하기는 불가능하다.그러나 이도 정도 문제다. 정치 입김이 세니 관료들은 국민보다는 청와대,장관,여당 실세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승진을 위해선 수십년간 쌓아온 전문성이나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정치권에 잘 보이기 경쟁을 해야 한다.적어도 고위직에는 미국에서 약 1백20년 전에 폐지된 엽관제가 사실상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공직사회의 전문성 저하,대응성 부족 등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정치인들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쉬운 예로 정부가 내세우는 '혁신'이 좋은 점도 있지만 혁신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드는 시간,워크숍 세미나 혁신전파회의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시간,혁신 성과를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성과를 종합평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혁신상황을 기준으로 부처를 평가하고 기관장을 평가한다고 하니 고위직 공무원들이 여기에 온 정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혁신'으로 윗분들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부처간 과도한 경쟁이 붙어 있다.
고위공무원들은 지쳐 있다.
진정한 혁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오는데 써야할 시간이 이런 쓸데없는 데에 허비되는 것이다.
고위공무원단제도가 도입된다면 승진을 앞둔 공무원이 '혁신과열'을 비판하고 이에 앞장서지 않는다면 바보일 것이다.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할 때 통과해야 할 관문인 역량평가의 9대 항목중에도 이미 '혁신주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혁신주도'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 관해서도 이를 측정할 시험도구조차 제대로 검증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제도가 운영될 지 중앙인사위원회의 만용이 걱정된다.
고급공무원은 이미 공직적성시험(PSAT)을 통해 자질을 검증받았고 공직에 들어선 이후 목표관리제,인사다면평가 등 끊임없이 평가를 받는다.
이에 더해 고위직 승진시 중앙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친다. 그것도 부족해 점점 확대하기로 한 소위 '개방형 직위'인 국장직엔 민간출신과 경쟁해 임용되도록 돼있다.
고위공무원단 제도까지 포함하면 유사한 취지의 제도들이 2,3,4중으로 겹쳐있으니 고위공무원은 평생 '입시생'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 정권의 기호에 맞는 인물이 선택되는 경향이 있고 경제부처 등 힘센 부처 출신들이 고위직의 다수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작금 한국의 고위공직사회는 엽관제를 탈피하는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위공무원들이 자리걱정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업무에 전념토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 오히려 '정무직 고위공무원단'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할수 있다.
공직생활 초기 '정무직 경력'과 '직업공무원직 경력'중 하나를 택하도록 해 정치적 업무와 행정적 업무로 분업하는 것이다. 정무직은 신분보장도 약할 뿐 아니라 장관비서실,국회나 정당의 전문위원직 등 정치와 밀접한 업무를 담당,장차 정치인으로서 성장토록 하는 것이다.
직업공무원직을 택한 사람은 신분을 보장,전문행정가로서 정권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공무원을 '바보'로 만드는 원인 제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혁한다면서 다시 '바보'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