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한.영관계가 절정에 있을 때 이뤄지는 최초의 국빈방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영국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883년. 돌이켜 보면 노 대통령의 이번방문은 무려 수교 121년만에 이뤄지는 최초의 국빈방문인 셈이다. 전두환,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이 각각 한 차례,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차례 영국을 방문했지만 모두 공식방문이었다. 국빈방문에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린 것은 영국 왕실의 관행이 지나치게 까다롭기때문이다. 국빈방문은 1년에 두 차례(상.하반기 각 1회)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영국이 우방의 국가원수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격식을 갖춘 행사로 초청은 국왕만이 할수 있다. 영국이 `특별한 관계'라며 중시하는 미국도 역대 대통령이 대부분 영국을 방문했지만 국빈방문은 작년 11월 영국을 방문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까다로운 영국이 이번에 노 대통령 내외를 국빈으로 초청한 것은 우선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한국 국빈방문에 대한 답방이라는 성격도 있지만그보다는 한국이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양자 또는 다자간 현안을 다룰 수 있는 파트너가 됐으며,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영국측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국빈방문의 상징성이 큰 만큼 성과에 대한 기대도 높다. 노 대통령은 우선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써 국제질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영국과 의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내년에는 주요 8개국(G8: 선진 7개국 + 러시아) 의장국이자 유럽연합(EU)의장국으로서 지구촌의 현안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영국의 지도자들과 개인적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당장 북핵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은 대서양 양안 관계의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를 자처하며 미국과유럽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이러한 위상은 북핵문제 해결에 나서는 한국 정부의 목소리를 유럽과 미국에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이번 방문은 경제 및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의 경제외교 행사 하이라이트는 영국 유수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과가지는 `라운드 테이블 토론회'. BP, HSBC, 스탠더드 차터드, AMEC 등 영국을 대표하는 25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바람직한 경제협력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난상토론을 벌인다. 노 대통령의 방문과 때맞춰 열리는 `하이-테크 포럼'도 주목되는 행사다. 이 행사에는 한국의 IT부문 대표기업들과 영국 관련 기업 등 400여사가 참석해 제휴방안을 협의한다. 지난해 양국간 교역규모는 68억달러. 올해는 9월까지의 교역규모는 72억달러. 1962년 이래 한국에 대한 영국의 누적투자는 34억달러로 유럽연합 국가중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방문은 양국 교역 100억달러, 투자 100억달러 등 `쌍둥이 100억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 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