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호 < 증권업협회장 > 벌써 몇 개월째 기금관리기본법 개정과 관련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국내 증권시장은 어려운 경기상황과 기관투자가들의 외면속에서도 비교적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탄탄한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질문은 '국내에서는 이렇듯 못미더워하는 주식시장을 외국인들이 왜 떠나지 않고 아직도 시가총액의 44%나 소유하고 있는가'이다. 그 해답은 우리시장의 펀더멘털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양적인 지표를 보자.시장전체의 PER가 작년 말 기준으로 10.3배에 불과해 미국의 19.8,일본 22.2는 물론 이머징 마켓 내의 홍콩 18.9,대만 15.1보다도 월등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우리 거래소 상장기업들의 평균 ROE(2003년 500종목)는 10.4%로 뉴욕증권거래소의 7.4%나 닛케이지수 기업의 2.8%보다 훨씬 높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기업지배구조와 기업회계 등 시장투명성이 선진국보다 낙후돼 있고 그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판을 하면서도 우리시장에서 매수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외국인들은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현재 한국의 금융감독기관과 시장참여자들이 추진하는 시장개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국 사라질 날이 올 것이란 장기전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할 때,외국인들이 우리시장에서 현금화해 자금을 옮길 만한 대체시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제조업에 걸쳐 최고의 국제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을 갖고 있는 한국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펀드운용의 기본인 수익률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기금투자가 본격적으로 허용될 때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빠져나갈 기회를 줄 것이란 일부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일 것으로 확신하며,오히려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축이 되어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 분담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시장은 지난 92년 시장개방 이후 IMF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지분을 규제하는 거의 모든 조치가 철폐됐다. 그 결과 몇몇 핵심 블루칩의 경우 외국인지분이 60%에 육박하고 있어 당장 경영권 방어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외국기관들에는 무제한으로 시장을 개방해 놓고 정작 국내 연기금에는 족쇄를 쳐 놓은 것이다. 그동안은 국내 연기금들이 비교적 높은 금리수준으로 인해 그럭저럭 수익률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저금리 추세가 정착기조를 보이는 상황에서 채권투자만으로는 더 이상 연기금이 현금흐름을 맞출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투자대상이 확대되지 않을 경우 우리사회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20~30년 후 심각한 자금고갈 사태를 맞을 것이라고 여러 연구기관에서 경고하고 있다. 비단 연기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나 최근 우리 금융권에는 지나친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시장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 IMF 이후 간접금융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그 성격상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용되고 있고,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해야 할 정도의 초저금리 현상을 낳고 있다. 이러한 지나친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최근 수년 사이 자본시장의 기능이 급격히 저하돼 지난 수십년간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기업가 정신이 점차 소멸되고 있다. 자본시장이 강해야 위험이 있는 분야로도 자금분배가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 관련 찬반 양쪽 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모두 잘해보려는 건설적 주장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토론은 충분히 했고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다. 하루빨리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연기금으로 하여금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자금관리 기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돌려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 현명한 결론을 내려줄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