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정부간 대립과 갈등이 날로 고조돼 지난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유엔 분담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14일 보도했다. 타임스는 오는 2006년 임기가 끝난 후에는 미련없이 퇴임하겠다고 밝힌 아난 총장이 작심이라도 한듯 특히 이라크 전쟁에 관해 미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거리낌없이밝히는가 하면 이라크 안정화에 관한 미국 정부의 협조 요청도 딱잘라 거절하고 있어 백악관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전했다. 아난 총장과 미국의 갈등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이라크전을 "불법"이라고 규정한 지난 9월 아난 총장의 BBC 인터뷰와 유엔 전범재판소 재판관들의 이라크 사법요원 훈련 거부, 미국, 영국, 이라크에 대해 팔루자 공세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 최근 아난 총장의 서한 등을 들 수 있다. 리처드 윌리엄슨 전(前) 유엔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이 모든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매우 가치있고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이라크에서 유엔은 자신의 이미지에 상처를 내면서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아난 총장이 시에라 리온이나 콩고민주공화국 등 다른 분쟁지역에는수천명의 평화유지군 파견을 권고하면서 이라크에는 `치안 부재'를 이유로 선거관리등에 꼭 필요한 유엔 요원의 파견을 거부하고 있는 점도 미국 관리들의 의구심을 사고 있다. 유엔에 주재하는 한 고위 미국 관리는 "미국과 이라크 국민은 모두 극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시에라 리온이나 콩고에 평화유지군 파견을 권고하는 아난총장이 이라크에는 단 7명의 요원만 두고 있다는 것이 모든 사실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치하 이라크의 인도적 수요 해결을 위해 유엔이 운용했던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둘러싼 비리에 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폴 볼커위원회'가 미국 의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아난 총장이 미국 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와도 마찰을 빚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아난 총장과 미국의 대립이 날로 격화되자 유엔 사무총장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자금 면에서 최대의 기여국인 미국이 유엔 분담금 지급을 거부했던 80년대의악몽이 재연될 가능성마저 우려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아난 총장 자신은 미국과 의도적으로 맞서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해명했다. 그는 타임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에 반대했던 국가들로부터미국과 협조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상황은 그와는 정 반대"라면서 "나는 중동지역의 한 가운데에 혼란에 빠진 이라크를 둘 수는 없기 때문에 이라크의 문명화는 이라크전에 대한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국제사회 공통의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난 총장은 "이라크에 파견된 유엔 요원의 보호를 전담할 국제군을 창설토록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각국에 병력을 파견해줄 것을 설득했으나 저마다 국내정치 등의 사정이 있어 여의치 않다"고 말해 대규모 유엔 요원의 이라크 파견이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치안문제 때문임을 강조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