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축으로 한 한국인의 남미 진출은 1962년 해외이민법 공포 이후 자발적 이민 역사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는 교민 80% 이상이 의류업에 종사하며 중요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해외로의 진출을 꿈꾸게 됐다. 당시 한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첫번째 해외진출 대상 지역으로 선택했고, 1961년 12월 브라질에 `문화사절단'이란 이름으로 이민을 위한 사찰단을 파견했다. 이를 계기로 마침내 1963년 2월12일 브라질 산토스 항 도착으로 시작된 남미 이민 역사는 만 40년을 넘기며 반세기로 접어들고 있다. 한때 6만명을 넘나들었던 브라질 교민수는 지금도 4만명을 헤아리고 있고, 80년대 후반 4만명까지 늘어났던 아르헨티나 교민수는 이 나라 경제위기의 여파로 급격히 줄었지만 1만5천∼2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70년대 이후 상파울루에 진출한 한인들이 봉헤치로 지역을 중심으로 의류상가를 시작했다. 곧이어 유대인 상가인 조제 파울리노 거리와 아랍 상인들의 지역인 브라스 구역의 오리엔치 거리로 진출했다. 당시 이 곳에 다른 민족이 도전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지역에 진출한 한인들은 가게를 임대, 소매업을 시작하다 이제는 도매업까지 진출했다. 현재 브라질 한인들의 가게는 약 2천개에 달한다. 가게마다 7∼8명의 원주민을 고용하는 등 오랜 고생 끝에 한인하면 의류업을 연상할 정도로까지 성장했다. 브라질 이민역사의 산증인 김철언(60) 브라질 한인회장은 "브라질 경제중심지 상파울루의 여성의류는 한인 상인들이 완전히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가게 당 권리금도 2∼3년 기준 20만∼30만달러에 달하고 매일 찾는 손님들로 주변 도로를 다니기가 불편할 만큼 대규모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구 4천만의 상파울루 주정부 조앙 카를로스 데 소우자 메이렐레스(69) 경제장관도 "일자리 창출과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섬유, 의류업에서 앞으로도 많은 활동을 해줬으면 한다"고 교포들의 경제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동포의 경우에도 대부분 의류업에 종사한다. 90년대 후반 한때 한인운영 의류점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지방의 의류점을 합해 도매상 1천개, 소매상 1천개로 추산됐지만, 지금은 경제위기 여파로 대폭 줄었다. 아르헨티나 한인회 관계자는 "8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3만달러 투자이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동포수가 급증했다"면서 "그러나 신이민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아보았기 때문에 이 곳의 혼란상이나 여건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뒤 상당수가 미국이나 캐나다, 다른 중남미국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이민은 끈질긴 교섭 끝에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이민 허가를 얻어 1965년 10월 1차로 한국 이민 13가구 78명이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남미 이민 역사 가운데 브라질에 이어 두번째로 1965년 4월 95명이 수도 아순시온에 도착하면서 첫 발을 내디딘 파라과이에서는 7∼8년전 2만명에 달하던 교민 숫자가 지금은 5천명 수준으로 급격히 줄었다. 칠레의 교민수는 수백 명 정도다. 남미내 이민 숫자가 감소 추세이지만 최근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제회복이 가시화하면서 떠났던 교포들이 다시 돌아오는 등 교민사회는 한층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교민들은 이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방문으로 교민사회 발전을 위한 획기적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교민들에게는 의류업에 한정된 경제활동을 다변화하는 게 우선 과제다. 이런 점에서 남미 투자 및 교역확대를 맞아 교포들도 일정 역할을 담당하며 자체 경제기반을 넓힐 좋을 기회가 될 수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지만 2세들의 한국어 교육 등 한인사회의 문화적 지속성 확보도 중요한 문제다. 이밖에 브라질 한인회의 상파울루 직항로 재개, 한인 공원 조성 추진 등 교민들의 애로점은 산적해 있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문이 국가적 수준의 경제ㆍ외교 현안 외에도 이 곳에 뿌리를 둔 한인 이민자들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이를 한 차원 성숙시키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