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혀 있는 쇠고기 오렌지 닭고기 등 자국산 농축산물의 수출 재개를 강력히 요청하는 등 대한(對韓) 통상압력의 고삐를 다시 죄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예상됐던 미국발(發) 통상공세 수위가 다시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는 한국과의 쌀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미국측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0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이날 세종로 정부청사 별관에서 열린 한·미 통상현안점검회의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닭고기 오렌지 등에 내린 수입금지 조치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닭고기는 조류독감,오렌지는 곰팡이균 발견으로 인해 각각 수입이 금지돼 있다. 정부는 미국측이 이같은 농산물 수입금지 해제 요구를 현재 진행 중인 양국간 쌀협상과 연계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관련,표면적으로는 쌀협상과 다른 농산물 통상현안을 연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쌀협상을 벌이고 있는 9개국 가운데 미국이 중국과 함께 최대 협상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문제를 최후 협상 카드로 꺼내 보이며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부측 분석이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으로 11억2천6백73만달러였지만,쌀은8천2백50여만달러에 불과해 미국으로서는 쌀보다 쇠고기 수입금지 해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소비자 안전문제와 직결된 사항이므로 쌀협상과 연계해서 양보할 문제가 아니다"며 "인체에 무해하다는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미국은 또 미국산 수입자동차 관세를 현재의 8%에서 2.5%로 인하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매년 불어나고 있는 한국과의 무역적자 문제를 들어 자국산 자동차의 관세 인하 요구 강도를 계속 높여나가고 있다. 미국은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과의 교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1백억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시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버드수정법(대미 수출업체의 반덤핑혐의로 거둬들인 상계관세를 자국내 관련업체들에 나눠준다는 내용)을 철폐하지 않은 것과 관련,WTO분쟁조정위원회에 유리제품과 냉동 수산물 등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 예비 신청 품목을 통보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