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교 가운데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불교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소홀히 해 하드웨어까지 녹슬어가는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2천년 전 대승불교 사상이 태동했듯이 지금이야말로 미래의 불교를 위한 사상적 불교개혁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인터넷사이트 불교경전총론(www.sejon.or.kr)을 운영하는 성법(性法·47·고양 용화사 주지) 스님은 신간 '이판사판 화엄경'(정신세계원 출판국·1만1천원)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구태의연한 기복신앙과 불경의 상투적 해석 등으로 인해 불교가 발전하기는커녕 '비불교적'으로 변해간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판사판 화엄경'은 화엄경 게송 45편을 빌려 불교의 주요 교리와 사상을 풀이한 책.지혜·수행·무아·공(空)·번뇌와 업 등 불교 이해를 위한 핵심적 항목별로 적합한 게송을 예시한 뒤 첨단과학 이론까지 접목하며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하나 가운데서 한량없음을 알고/한량없는 가운데서 하나를 알아…'라는 문수사리 보살의 게송을 설명하면서 성법 스님은 빅뱅,양자론,프랙탈 등의 현대물리학 이론을 동원한다.


또한 '그 모양 둥글고 혹은 모났으며/혹은 다시 세모나고 팔모났으며/마니바퀴 모양과 연꽃 모양들이라'라는 보현 보살의 게송은 허블 망원경으로 찍은 우주의 사진들과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현실 불교에 대한 비판도 날카롭다.


성법 스님은 "중생 구제자로서의 관세음보살만 강조하고 소리를 수행의 근원으로 삼는 수행자로서의 관세음보살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데서 기복 불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저 뒤바뀐 지혜로 말미암아 온갖 악만 키워가네'라는 승혜 보살의 게송을 통해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순간을 경계하라고 이른다.


책 제목의 이판사판(理判事判)은 원래 화엄경에 있는 말로 이판은 본질,사판은 현상에 대한 판단을 뜻한다.


성법 스님은 "현상과 본질로 구분되는 세상과 우주의 원리를 통합하는 바른 가르침을 화엄경에서 배우자는 뜻과 현실 불교계 및 사회에 대한 비판의 뜻을 함께 담았다"고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