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혼수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수십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의 행방을 찾기 위한 물밑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아라파트가 부정축재한 것으로 알려진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 수색에 나선 것은 부인 수하 아라파트(41)가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 사법 당국이다. 프랑스 검찰은 2001년 이래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수하 여사 명의로 된 스위스및 프랑스 은행 계좌로 입금된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아라파트 비자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지난해 예비조사를 벌였다. 수하 여사는 `부적절한 금융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아리엘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음모에 프랑스 검찰이 농락당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아라파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독립투쟁의 영웅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일단 아라파트에게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아라파트의 비자금 규모가 적어도 1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좌파 성향 신문인 하아레츠는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 팔레스타인정부 계좌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돈이 유출된 것이 확실하다고 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제통화기금(IMF)의 2003년 보고서를 인용, 1999년 한해에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재무부 계좌에서 8억9천760만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다고 밝혔다. 프랑스 검찰도 이런 IMF 보고서를 토대로 1천100만달러가 입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하 여사의 계좌에 대해 `돈 세탁' 혐의로 예비 조사를 벌였다는 것. IMF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계좌에서 빠져 나간 돈 가운데 1억2천만달러가 인티파다(봉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자치정부 계좌로 역송금됐으나 나머지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가 발간된 뒤 아라파트는 미국 회계사들을 고용, 회계 장부를 조사하도록 허용했으며 지금까지도 이들의 감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미국의 TV 프로그램인 `60분'은 미국 회계사들이 아라파트의 비자금이 코카 콜라 병입회사, 전화회사,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케이맨 제도의벤처캐피털 등에 분산 투자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었다. 더 타임스는 아라파트가 사망하면 권력 뿐만이 아니라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물려받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