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사양산업으로 불릴지 모르겠지만 여기선 최고 인기 기업들입니다.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입은 채로 출퇴근할 정도니까요."


지난달 29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오리온하넬과 태평양물산 공장으로 이동하던 길에 이성길 KOTRA 하노이무역관 부관장이 한국 기업의 높아진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TV 브라운관 제조업이나 의류 봉제업은 한국에선 잃었지만 베트남에선 달러 박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세계적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용절감은 물론 '빅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노동환경 개선에도 총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노이 롱비엔 지역에 자리잡은 오리온하넬 공장.한국의 오리온전기와 베트남 하넬사가 7대3의 지분을 투자해 지난 95년 설립한 TV브라운관 생산법인이다.


생산라인에선 2천5백여명에 이르는 현지 노동자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눈길을 끈다.


오리온하넬은 기존 14,16,20인치 생산라인에 이어 지난 7월부터는 신축된 21인치 평면 브라운관 공장도 가동을 시작했다.


생산된 제품의 70%는 미주와 유럽으로 수출되고 나머지는 삼성 LG 파나소닉 도시바 등 현지 세트 업체에 납품되고 있다.


김영식 법인장은 "내년엔 마른 수건을 짜서라도 비용을 10% 이상 줄여나갈 것"이라며 "실적 목표는 4백50만개 생산에 매출 1억6천5백만달러로 올해 예상치보다 50% 정도 늘려잡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 노조로 골머리를 앓아온 한국 본사와 달리 이 공장은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고 있다.


노조가 회사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 합리적인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직원들을 설득하기까지 한다는 설명이다.


김 법인장은 "평균 임금이 월 1백달러 수준이지만 불량률은 한국 공장보다 낮을 정도로 노동 생산성이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하노이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는 태평양물산 공장은 마치 70년대 한국의 봉제공장을 연상케 한다.


지난해 11월 태평양물산이 베트남에서만 세번째로 건립한 이 공장에선 3천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재봉틀 앞에 앉아 재킷 바지 니트 등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제품은 전량 갭 컬럼비아 타켓 리복 등 유명 브랜드를 달고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된다.


올 들어 10월까지만 3백99만장의 의류가 생산돼 2천5백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 중이다.


겉으로 보기엔 과거 한국의 봉제공장과 다를 바 없지만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 노동환경은 지금의 한국보다 낫다.


원단을 자르는 노동자의 손엔 철실로 제작된 특수 장갑이 씌워져 있고,공장 곳곳에 응급 약품이 비치돼 있다.


비정부기구(NGO)들로부터 열악한 노동환경의 후진국 저임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을 들여온다는 비판을 받아온 유명 브랜드 바이어들의 갖가지 요구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안장옥 법인장은 "바이어들이 1년에 2번 정도 정밀실사를 나와 미성년자 채용,안전관리 준수 등에서부터 공장 및 기숙사 온도까지 2백여가지를 체크한다"면서 "요구 수준에 못미치면 거래를 끊는 경우도 있어 최적의 노동환경을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박닌=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