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 투표율이 지난 1960년 이후 44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에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 존케리 후보가 투표율 상승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투표율 상승은 젊은이들과 소수계 유권자의 투표 참여가 늘었음을 의미하며 이들 가운데 케리 후보 지지자가 많다는데 근거를 둔 분석이었다. 그러나 `부시의 제갈공명'이라는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은 투표율이 이처럼높게 나왔다는 소식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로브 고문 역시 민주당선거전략가들이나 유권자 권리옹호단체들 못지 않게 투표율 제고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가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대상은 다름아닌 `복음주의자(이반젤리스트)'로 불리는 보수파 기독교도들이었다. 복음주의자는 신앙생활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며 성서를글자 그대로 해석해 따르는 보수파 기독교도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동성애, 낙태 등을 옹호하는 진보주의를 끔찍이 싫어하며 따라서 진보파를 대변하는 케리 후보보다는 전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그다지 정치적이지는 않아 지난 2000년선거에서는 투표 참여율이 높지 않았다. 인종적으로 백인, 지역적으로는 중부와 남부 농업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로브 고문은 이들을 투표장으로 적극 유도하지 않는한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기는 어렵다는 판단아래 이번 선거전을 진보 대 보수의 이른바 `문화전쟁' 양상으로비화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우선 케리 후보의 본거지인 매사추세츠에서 동성결혼 인정 판결이 난 것을 계기로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동성간 결혼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복음주의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첫 움직임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벌떼처럼들고 일어나 "미국의 헌법은 자유의 확대를 위해서만 개정돼 왔지 특정계층의 권리를 제약하기 위해 개정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의석분포상 헌법개정이 불가능한것도 분명했지만 로브 고문이 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결국 헌법개정 논의는 불발됐지만 이로 인해 많은 주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헌법 개정에 착수했고 결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된 주 헌법 개정안 찬반 투표에서 11개주가 이같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란이 이번 선거에 미친 영향은 무엇보다 정치에 큰 관심이없었던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의 위기의식을 고취시켜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냈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로브 고문의 심모원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 선거진영은 9.11과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인들의 안보우려가 크게 높아졌다는 점에 착안해 "안보에는부시"라는 선거전략을 치고 나갔다. 그러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 학대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약발'이 떨어지는 기미를 보이자 케리 후보가 '주류에서 벗어난 진보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전략을병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시 선거진영이 케리 후보를 '못말리는 진보주의자'로 몰아붙인 데는 의료, 교육, 조세 등 사회ㆍ경제 분야 정강, 정책이 주된 근거가 됐지만 낙태나 동성애, 신앙 등 복음주의자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이슈들도 비중있게 거론됐다. 로브의 머리 속에서 미리 계산된 변수는 아니겠지만 때마침 영화 `슈퍼맨' 주연배우이자 장애인이 된 후 줄기세포 연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크리스토퍼 리브가사망하면서 촉발한 논쟁도 복음주의자들의 위기의식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로브 고문은 지난 2000년 선거 때 투표하지 않은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이 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총력을 다했으며 이런저런 요인들이 결합돼 그 전략은 효력을 발휘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분석했다. 로브의 `혜안'이 특히 진가를 발휘한 곳은 이번 선거의 결과를 사실상 좌우한오하이오주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전통 산업의 중심지인 오하이오는 산업구조의변화와 이에 따른 아웃소싱의 열기 속에서 미국의 어떤 주보다 많은 일자리를 잃은곳이어서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케리 후보의 보호주의적 공약이 다른 어느곳보다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선거구였다. 그러나 중서부 지역의 보수주의 전통이 남아있고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세가 강한 이 지역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공화당의 선거전략은 이같은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했다. 때마친 대선과 함께 실시된 동성결혼 금지 헌법개정안은 복음주의 기독교도들이 만사 제쳐놓고 투표장을 찾도록 한 요인이 됐다. 오하이오주 출구조사에서 스스로를 `백인 복음주의자'로 밝힌 유권자는 전체 투표자의 24%나 됐고 이들이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 비율이 무려 73%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화전쟁'을 의도적으로 야기한 로브의 전략이 아니었다면 오하이오주에서 부시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복음주의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두번째 임기에서 행동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구속받게 됐으며 이는 결정적인 부담이 될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극단적으로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통합을 이루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대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하겠지만 자신의 재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복음주의자들은 특히 민감한 사회현안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입장을 고수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