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씨(61.오마에&어소시에이츠대표)는 "한국은 리틀재팬(Little Japan)전략으로 산업화에 성공했지만,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중진국 대열에서도 탈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마에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창간 40주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정치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경우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로부터도 추월 당할 것"이라며 "한일 자유무역협정(FTA)도 대책없이 체결하면,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대담=최인한 도쿄 특파원 ] 그는 이어 "미국의 리더십은 쇠퇴하는 반면 유럽연합(EU)의 영향력이 커져 내년부터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유로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고려대와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매 학기 한국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 고공 행진이 지속될 것인가. "유가 급등은 이라크가 세계시장에 원유를 공급하지 못하면서 수급 불균형이 생겨 발생했다. 헤지펀드들의 투기 수요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전지대인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하는 부시 정권은 유가 상승을 즐기기 때문에 당분간 고유가는 이어질 것이다." -고유가로 인한 세계경제 충격은. "국가별로 다르겠지만 일본은 지난 79년 2차 석유위기 이후 에너지 효율화에 힘써 배럴당 80달러까지 올라도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한국 중국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고속 성장을 질주 중인 중국경제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성장세가 둔화될 게 확실하다.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인 중국경제의 성장률 저하로 인한 2차 충격이 더 큰 문제다." -내년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을 꼽는다면. "물론 미국 대통령 선거다. 미국은 세계 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며,정치 군사적으로도 각국에 영향을 미친다.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세계경제에 파장이 예상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세계평화가 더욱 위협받고,결과적으로 세계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데,미국의 리더십이 계속될 것인가. "미국이 지난 1세기 동안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인종 민족 종교 등을 하나로 묶어 다원주의체제 아래 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세계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하지만 부시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은 '존경과 신뢰'가 아닌 '공포'의 대상이 됐다. 반면 가맹국이 25개국으로 늘어난 EU는 다양성을 보유,유럽의 전성시대가 다시 올 것으로 본다. EU 체제가 공고해지는 5년 안에 세력 판도가 바뀔 것이다." -기축통화로 유로화가 달러화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EU가 확대되고 안정화되면서 공동 화폐인 유로화 가치도 출범 당시 수준을 회복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통화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달러를 팔고 유로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에 대한 신뢰감이 약해져 '유로화 강세-달러 및 엔화 약세' 체제가 예상된다." -중국경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국제 유가 급등이나 미국경제 둔화 등 악재도 있지만,중국경제는 고성장세를 지속할 게 분명하다. 필자가 '중화연방'이라는 표현을 썼듯이 대도시 등 일부 지역의 성장률이 둔화돼도 새로 성장하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중국경제는 발전할 것이다." -중국 외에 고성장이 예상되는 국가는. "인구 1억명 이상 국가 중에는 BRICS가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또 5천만명에서 1억명 사이의 3T(태국 터키 베트남)도 10년 내에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는 미국 중심에서 2010년 안에 다극화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극화 체제 아래 일본경제는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다극화 체제에서 일본의 이점은. "일본경제는 기본적으로 효율이 낮은 구조다. 제조업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산업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일본기업만이 가진 기술이나 부품,기계장치 등이 있다. BRICS,3T 등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일본산 장비를 수입해야 한다. 세계에서 이런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는 일본밖에 없다." -한국을 30여차례 방문하고 대학 강의도 맡는 등 한국경제에 관심이 많은데,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중진국 우등생이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일본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싸게 팔아 성장했지만 1,2년 안에 그런 기회는 사라진다. 중국 등 후발 제조국들이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이 가능한 핵심 기술과 제품이 없으면 현재 지위를 잃게 된다. 한국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삼성은 소니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평가도 있는데. "실제 내용을 들여다 보라.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삼성 의존도는 20%대에서 40%대로 높아져 삼성에 '탈'이라도 나면 한국경제는 타격을 입게 된다. 또 삼성이 한두 품목에서 일본 수준을 따라왔지만 기초 기술이나 상품력에선 한 수 아래다. 삼성이 일본에서 수입을 가장 많이 하는 회사라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기업만이 만들 수 있는 고유 기술력이 없다면 그 명성은 오래 가지 못한다." -한국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리더들의 책임이 크다. 한국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중국에서 싸게 부품을 생산하고 한국에서 조립,수출해 물량을 늘려봤자 외형만 커지고 국내 설비투자나 고용 증대에 도움이 안된다. 남북문제도 중요하지만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이 살 길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일 FTA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는데. "일본인들은 대찬성이다. 그렇지만 한국에 애정을 가진 전문가 입장에서 걱정이 앞선다. 관세 장벽이 없어지면 한국인이 아무리 애국심이 있다해도 자동차 냉장고 등 공산품에서 한국산 제품을 얼마나 계속 살지는 불투명하다. 시장이 개방되면 일부 농산물,건설업 정도만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FTA가 대세라면 한국인들은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