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뉴욕상업거래소 개장이후 처음으로 심리적 저지선인 배럴당 5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산업계는 중동산 원유를 주로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WTI와 브렌트유를 중심으로 한 가격 급등세가 중동산 원유의 기준유가인 두바이유로 파급되는 것은 약간의 시차만 있을 뿐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유가 급등은 최근 미국 멕시코만의 허리케인 피해로 현지 석유생산시설 가동이 차질을 빚고 이에따라 미국의 석유재고가 낮아지면서 시장불안을 가중시킨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현재까지 허리케인 이반으로 인한 멕시코만 지역의 석유생산은 전체 생산량의 29%에 해당하는 하루 48만4천 배럴 가량 감소한 상태로 생산재개가 더딘 진행을 보이고 있어 석유재고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지는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내전상황인 나이지리아에서도 반군측이 니제르삼각주 지역에 대한 자치권과 석유 소유권을 주장하며 외국 석유회사 근로자들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석유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것도 유가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3월 니제르 삼각주 서부의 와리시에서 발생한 인종 분쟁으로 수주간 석유 수출이 40% 가량 줄어든 적이 있다. 미국 석유재고 감소에 따른 공급 불안이 한달 이상 지속될 경우 석유 소비량이 많은 겨울철로 이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유가 초강세 현상이 수개월간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석유 전문가들은 미국의 석유류 통계에 부정적인 수치가 지속될 경우 유가는 배럴당 60-7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의 언급처럼 최근의 고유가는 일련의 불규칙한 상황들이 겹친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고 현재 유가에 거품이 끼어있는 만큼 시장 불안 요소가 해소된다면 일시에 급락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더욱이 최근의 유가상승이 지난 달과는 달리 중동산 두바이유보다는 WTI나 브렌트유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조금을 덜할 것이라는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구자권 석유공사 해외조사팀장은 "두바이유와 WTI 가격차가 장기간 10달러 이상벌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80% 가까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가 중동산 두바이유가격을 기준으로 하는만큼 지난 8월보다는 피해가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요동치는 국제유가로 비용상승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업계는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하반기 국내 경제는 내수불황 장기화와 수출둔화와 함께 성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유가마저 급등하자 최악의 국면에 대비한비상경영체제를 수립하는 대기업들도 늘고 있다. 항공업계가 대표적인데 대한항공은 고유가로 경영압박이 심해지자 무급휴직을실시하는 등 긴축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최근 무급휴직 희망자 약 100명을 모집, 지난 1일자로 무급휴직 인사명령을 내렸는데 이들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2개월간 쉬게되며 해당기간 만큼승급이 정지된다. 대한항공은 이와함께 장기근속자에 대한 여행경비 지원도 이달부터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유보했으며 인천-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을 주 3회에서 주 2회로 감편한데 이어 11월1일 이후 동계기간에는 운항을 중단키로 하는 등 유럽, 일본, 동남아등의 비수익 노선을 중심으로 운항중단 및 감편도 시행하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화섬업계는 대부분 업체들이 최근 2-3달 사이 유가상승으로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의 원료가가 30-40% 급등하자 공장가동률을 70-80% 수준까지 낮추고 있다. 현대차는 연구.생산.판매 등 사업부문별로 급하지 않은 투자와 지출을 자제하고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는 등 본격적인 내핍경영에 나서는 한편 생산량 대비 에너지사용실적을 분석, 철저한 피드백을 통해 에너지 소비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밖에 현대중공업은 최근 전사적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착수했고 대우조선은수익성만회를 위한 비상경영을 선포했으며, 포스코는 조강생산량 1t당 에너지사용량을 520만㎉에서 2006년까지 400만㎉로 낮추는 에너지관리 계획을 수립, 시행중이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기자 faith@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