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25일,서울 상암동 축구장에서 펼쳐진 독일과의 월드컵대회 4강전.붉은악마 응원단은 카드섹션 주제로 '꿈은 이뤄진다'를 택했다. 16강 진출이 최대 목표였던 한국팀이 준결승전까지 진출하자 만든 문구였다. 이날 경기엔 패했지만 이후 이 말은 사회적 유행어이자 일종의 주문처럼 번져나갔다. 간절한 소망을 담은 주문의 위력에 얽힌 얘기는 수두룩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나 깨나 꿈꾸던 일이 어느 날 실현됐다고 털어놓고,자식의 안위를 위해 정한수 떠놓고 '비나이다'를 되뇌이던 순간 멀리 있던 자식이 실로 우연히 화를 면했다는 식의 일화도 많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은 허다한 경험담 앞에서 힘을 갖지 못한다. 공중파TV에서 무속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일일극을 내보내는 가운데 소원을 위해 주문을 외우는 장면을 도입한 '주술 광고'가 늘어난다. 통신회사의 국제전화 광고로 유학간 남자친구가 한눈 팔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내용이 뜨는가 하면,간장 광고로 나물을 버무리며 '맛있어져라,맛있어져라'하고 주문을 불어넣는 장면도 등장했다. 주문(呪文)의 주(呪)자는 '입 구(口)'에 '부를 황(兄)'자를 더한 것이다. 영어의 '인보크(invoke)' 또한 '간구하다'와 '주문으로 불러내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함께 쓰인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는 주문의 대명사이거니와 주문이란 보이지 않는 힘을 빌리기 위한 도구다. 광고가 사회현상을 반영한다면,주술광고의 증가는 소망 달성을 위해 주문이라도 외우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걸 뜻할지 모른다. 그러나 월드컵 4강 진출은 피나는 노력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우스갯소리같지만, 영화 '사랑과 영혼'에 보면 귀신도 육체 없이 깡통을 쓰러뜨리고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 능력을 갖고자 훈련을 거듭한다. 밀가루환도 몸에 좋다고 믿고 먹으면 효험을 볼 수 있다는 플라세보(placebo,위약) 효과처럼 의학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많고 주문 역시 그렇다. 그러나 '꿈은 이뤄진다'를 내세워 로또복권에 기대거나 주문에 매달리는 건 퇴행현상에 다름 아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건 주문이 아니라 노력과 실천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