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는 (한·중·일간) 상호 경쟁적인민족주의적 서술의 눈보라 속에서 1세기 동안이나 굳게 얼어붙은 채 묻혀 있었다." 16일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개막한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 주최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서 인도 출신 호주 시드니대학 P. N. 모한(Mohan) 교수는 1880년대 재발견 이후 지금까지 전개된 광개토왕비 연구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러면서 모한 교수는 광개토왕비를 "(고구려) 당대 이념의 산물"로 규정하면서,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하나로서 불교를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광개토왕이 백제와 결탁한 왜(倭), 혹은 왜구(倭寇)를 격퇴했다는 비문의 기록은 천하를 고구려 및 고구려왕 중심으로 재편하는 이데올로기를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탄생한 허구"라고 주장했다. 모한 교수는 '새로운 시각에서 본 광개토왕비: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라는 발표문에서 "그간 광개토왕비 연구는 동아시아 관련 각국이 현재의 국가적 상황과 연결되는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도구로써 사용해 왔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광개토왕비 연구를 한동안 독점한 초기 일본사가들은 "우월한 일본이 후진적인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를 비문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한국은 고대 한일관계사에서 한국의 정치적 우월성을 조장하는 데 주력했다고 비판했다. 중국 학계의 비문 연구에서도 1990년대 이후 제기된 다민족 통합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비문에 나타난 고구려의 독립적인 국가적 위상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삭제해 버렸다"고 덧붙였다. 모한 교수는 이어 광개토왕 직전인 소수림왕 때 고구려에서 불교가 공인된 사실을 주목하는 한편, 고대 인도 불교사와의 비교사적인 고찰을 통해 "광개토왕 비문에는 주변지역에 대해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행사하려는 전륜성왕(轉輪聖王), 혹은우주적 통치자로서 고구려 왕권을 구축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투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문에) 신라와 백제가 나란히 (고구려의) 속국이라고 기록한 것이 과장과 허구이듯이, 광개토왕이 왜를 격퇴했다는 기록도 과장과 허구"라고 말했다. 모한 교수는 "비문에 기록된 것처럼 왜가 이미 바다를 건너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정벌을 감행한다는 것은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지적한 뒤 "그럼에도 이런 허구적인 기록을 비문에 삽입한 것은 광개토왕이 모든 방면에서 성공한 전륜성왕으로서의 위치를 확인시키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17일에는 몽골 과학아카데미 오 바트사이한(42) 연구원이 중국측이 시도하고 있는 몽골 관계 역사 왜곡 실태를 발표한다. 이 글에서 그는 90년대 이후 중국이흉노조차 중국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로 분류하는가 하면 몽골 독립투사들을 매국노로 규정하는 등의 구체적 사례를 들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