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일 철 최근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1천의 1 화폐개혁설이 나왔다. 필자의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보았다. 역시 최소단위는 10원이었다. 만일 리디노미네이션이 감행된다면 10원(또는 환)이 1만원권과 같게 된다. 그렇게 되면 원밑에 전(錢)이 다시 생겨 1전에서 1백전(1백전=1원)을 쓰게 된다. 지난 2002년 7·1조치 때 북한은 1원 이하의 전단위를 없앴다. 꼭 10년 전인 1992년 7월1일에도 북한은 화폐개혁을 했다. 1 대 1의 화폐개혁이었다. 북한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도 왜 화폐개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폐개혁 조치의 실체가 밝혀졌다. 이 조치는 1 대 1의 신구화폐 교환이었다. 가구당 3백99원만 신화폐로 바꿔주고 나머지는 예치·동결시켰다. 이 조치로 북한은 3백99원의 '사회주의적 평등'을 달성했다. 장마당 지하경제가 번성하면서 형성된 빈부격차를 이 조치를 통해 '결과의 평등'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에서는 개인 소유권은 모두 비법적 거래로 간주되고 또 개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북한 당국에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생겼다. 북한 돈의 신인도가 확 떨어진 것이다. 또 그 결과로 미 달러화가 최고라는 기형적인 선호현상이 강화됐다. 상대적으로 북한 화폐는 태환가치가 없어졌고 북한 경제는 일종의 비화폐경제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2002년 7·1경제 개선조치는 북한매체들이 선전하듯 외형상은 시장경제의 실험인 듯이 보였다. 이 조치로 1백전까지의 전단위가 없어졌다. 또 실물 가격이 일거에 인상됐다. 쌀은 1kg 8전에서 54원으로 무려 5백50배나 올랐고 다른 생필품 값도 20배,30배 또는 그 이상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돈의 가치를 5백50분의 1 또는 30분의 1로 평가절하한 화폐개혁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2002년의 7·1조치는 무엇인가. 2002년 7월2일 북한의 민주조선에는 '원에 의한 통제'란 해설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는 "국가의 통일적 계획이라는 경제 원칙을 다시 세우려면 계획과 계약에 없는 비법적인 거래를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로 명시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기에 식량배급이 중지되는 등으로 장마당의 비법적 거래가 번성했다. 그 결과 장마당에 나선 사람들의 소득에서 적지않은 빈부격차가 생겼다. 이들 시장적 소득을 강제로 압수할 수는 없다보니 묘안으로 나온 것이 북한 돈의 평가절하였다. 장마당 상인들의 돈은 졸지에 종이조각이 되었다. 다시 북한의 자유시장에서는 초인플레가 생기고 유력자들이 은닉한 미 달러화의 가치는 더욱 높아져 빈부의 격차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중되었다. 미 달러화든 유로화든 외화선호는 더 이상 막을 길이 없게 되었다. 7·1조치로 군수공장 등에서 임금이 10배,20배 올랐으나 평가절하로 급증한 화폐수요를 제때 맞추지도 못했다. 화폐 인쇄용지 부족으로 인상된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북한이 초인플레에 시달리다 못해 또 다시 통화개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북한 화폐의 태환가치가 없어지고 위조지폐도 생겨 화폐개혁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었다. 북한 역시 유로당 2천원 정도인 북한 원을 유로당 1원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공식환율을 끌어내리면 북한돈의 태환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허세연출에 불과하다. 북한 지도부는 아직도 화폐가 시장적 교환 속에서 그 값이 인정되는 자생적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다. 시장교환이 없는 완전한 계획경제에서는 시장의 실세 레이트가 없어서 화폐경제라고 할 수 없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 속에서만 생명력이 있는 화폐가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시장질서에 역행하는 화폐개혁은 결국 국내외 시장의 보복을 피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의 근간인 화폐질서에 손을 댈 때에는 그 개혁안이 자초할,국정혼란이라는 또 하나의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