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사 창구를 통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선박 펀드'.하지만 지난 3월말 첫선을 보이기까지는 무려 7개월이 걸렸다. 웬만한 공장 하나 설립하는 것보다 소요 기간이 훨씬 길었던 셈이다. 법원(설립등기) 해양수산부(선박투자업 인가) 수출입은행(대출 예비승인) 재정경제부(해외 자회사 설립인가) 한국은행(외국환거래신고) 금융감독원(유가증권신고)의 '레드 스탬프(인·허가 직인)'를 일일이 받아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적 해운선사를 지원,동북아 물류중심을 실현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출발해 관련 부처가 모두 개입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어머니가 너무 많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우여곡절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투자자들에게 환금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펀드 상장을 추진했지만 당국은 여태껏 가타부타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 증권사들이 지난해 4월부터 앞다퉈 내놓고 있는 주가연계증권(ELS)도 유사한 전철을 밟았다. 법령 미비로 발이 묶여 6개월이나 허송세월했다. 은행 금융상품인 ELD는 5천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으면서도 ELS보다 6개월 앞서 판매 인가를 받았다. 공적 자금을 대거 지원받았던 은행에 비하면 차별대우가 분명하다. 증권사 신상품에 대한 정부의 차별 규제가 심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상품 운용을 잘못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힌 적이 여러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적기에 경쟁력 있는 상품을 선보이지 못해 존폐 위기에 처한 데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일조를 한 게 분명하다. 한국 증시는 지금 온갖 불명예(?)스런 기록을 안고 있다. 개인선물 거래비중,외국인 투자비중,단기 급등락 등에서 모두 세계 1위다. 특히 취약한 기관은 증시 환경을 더욱 악화시킨다. 투신권 펀드의 양과 질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투신권 펀드는 6천7백26개.숫자로는 미국 프랑스 다음이나 펀드당 평균 규모는 2백16억원으로 수탁고 상위 20개국 평균(3천96억원)의 7% 수준에 불과하다. 증권·자산운용업이 '규모의 경제'에 실패한 것도 증시 발전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연기금마저 손발이 묶여 있어 '외국인'과 '프로그램 매매'가 서울 증시를 휘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증시가 불안정해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은 단타 매매에 치중하고 있다. 개인 선물거래 비중이 기관을 훨씬 웃도는 등 카지노 자본주의의 전형이 우리 증시의 얼굴이다. 초우량 기업들의 주가가 제값을 못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결국 정부 기관 개인의 합작품이다. 증시 환경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래야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 시대를 열 수 있다. 박기호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