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敦 < 중앙대 교수ㆍ법학 >

증권집단소송제가 도입된데 이어 시민단체와 일단의 변호사들이 소비자 집단소송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불량만두'사건 수습 과정에서 정부 당국자가 식품집단소송을 도입하겠다고 밝혀 소비자 집단소송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외 어느 나라도 선뜻 채택하지 않는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참으로 엉뚱하다.

집단소송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이 제도가 원래 취지와 달리 변호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많아 폐지하자는 논의마저 일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일단의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소송을 제기하고 동일한 피해를 당한 소비자는 별도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도 같은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이 제도는 이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이상과 전혀 다르다.

일반 소송에서 변호사는 당사자를 대리하는 데 그치지만 집단소송에선 변호사가 사실상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주도한다.

막대한 소송비용도 변호사가 부담한다.

패소하면 변호사는 비용도 못건지지만 승소하면 거액의 성공보수를 거머쥐게 된다.

변호사는 소송을 빌미로 기업과 협상을 하는데 원고인 소비자보다 자기에게 더욱 유리하도록 사건을 타결짓게 마련이다.

징벌적 배상을 함께 청구하는 경우엔 소송 액수가 엄청나게 커져 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사건을 타결짓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변호사는 거액을 챙기고 피해자는 미미한 배상을 받는데 그친다.

석면소송,담배소송 등 많은 집단소송이 이런 식으로 타결됐다.

이들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는 모두 억만장자가 됐다.

1999년에 타결된 도시바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변호사들은 무려 1억5천만달러를 챙겼다.

노트북에 장착된 작은 부품이 극히 드물게 사소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집단소송의 이유였는데 노트북 사용자들은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었다.

변호사들은 천문학적 보수를 챙겼지만 소비자들은 다음에 도시바 노트북을 구매할 때 소액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얻었을 뿐이다.

실리콘 유방확대 수술사건도 집단소송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1990년 CBS방송이 실리콘 유방확대술이 유방암을 일으킨다는 보도를 한 후 다우코닝 등 실리콘 제조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무더기로 제기됐다.

소송에 견디다 못한 다우코닝은 파산을 했다.

그러나 1996년 하버드의대는 실리콘과 유방질환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발표했고 미국학술원도 이에 동의했다.

무책임한 방송보도와 집단소송 때문에 멀쩡한 우량기업이 망한 것이다.

집단소송 변호사들의 먹이 사냥은 끝이 없다.

자동차 회사,항공사,비디오 렌털체인,생수회사,신용카드회사 등이 별의별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해 곤혹을 치렀다.

기업은 막대한 소송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킬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셈이다.

어느 작은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회사가 요금을 부당하게 부과했다고 주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패소한 수도회사가 파산해 수돗물이 끊기자 주민들은 사재를 털어 빚더미회사를 인수해야만 했다.

미국상공회의소와 많은 학자들은 선의의 피해자에게 별 도움이 안되는 집단소송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집단소송의 부작용을 인식한 의회가 이 제도를 개정하려고 하자 변호사들은 정치자금을 모아 반대 로비를 했다.

변호사들이 이익단체가 돼서 정치과정에도 개입하고 있으니 소송망국(訴訟亡國)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일본 등 많은 나라가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개혁이란 미명(美名)하에 증권집단소송제를 도입한데 이어 소비자집단소송도 도입하려고 한다.

증권집단소송은 일정지분의 주식소유가 제소요건으로 규정돼 있지만 소비자집단소송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여기에다 징벌적 배상제마저 도입한다면 한국은 악덕변호사의 천국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이러고도 기업의 의욕을 살려 경제를 구하겠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