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재규(박신양) 일당은 경찰과 다른 조폭 무리들에게 쫓겨 숨어들었던 절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 스님들의 도움으로 배신자를 물리친다.

서울로 돌아간 그들은 1년 뒤 스님들에게 축구공과 운동복,수세식 화장실 설치비를 선물한다.

절에 머물 때 '퍼세식'인 해우소 청소를 하느라 고생했기 때문이다.

우리 화장실은 오랫동안 퍼세식이었다.

측간 뒷간 변소 해우소 등 이름에 상관없이 냄새 때문에 집 바깥,그것도 되도록 먼 곳에 만들었다.

오죽하면 '변소와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생겼을까.

그러니 한밤중,그것도 한겨울에 볼 일을 보러 나가려면 춥고 무서웠다.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77년 음식점과 유흥업소의 허가 조건에 수세식 화장실 설치 의무화를 포함한데다 아파트가 늘어난 게 한몫 했다.

초등학생 가운데 퍼세식이 무서워 학교 화장실에 못가는 아이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였다.

도시의 경우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용문화는 엉망진창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물론 일반건물의 화장실 가운데도 휴지가 없는 건 물론 변기가 막혀 퍼세식보다 더 더러운 곳이 수두룩했다.

국내 화장실은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화장실문화 개선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달라졌다.

'깨끗하고 쾌적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운동이 펼쳐진 결과 음식점 화장실은 물론 고속도로 휴게실 같은 공중화장실에까지 꽃과 액자 방향제가 구비됐다.

겉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셈.그러나 속은 마구 버린 휴지와 침,담배꽁초 때문에 지저분하기 일쑤다.

외국도 비슷한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카페에 '말하는 화장실'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화장실을 함부로 사용하면 "기본 위생규칙도 지키지 않았다"는 식으로 꼬집는 장치를 달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장실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건 전적으로 사용자 태도에 달렸다.

휴지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벌금을 물리는 금강산의 화장실은 놀랍도록 깨끗하다.

말하는 장치나 벌금 없이도 언제나 깨끗해 기분좋은 공중화장실을 갖게 될 날을 기다린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