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고대 성곽인 죽주산성(竹州山城)은 세 차례 이상 시기를 달리하며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밝혀졌으며,이른 시기 유물로는 초기 삼국시대에 속하는 토기류가 출토됐다.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는 내성ㆍ중성ㆍ외성의 3중성인 죽주산성중 남쪽 벽 일대를 조사한 결과 맨처음 석축(石築) 성벽을 조성한 이후 후대에 여러차례 보축(保築)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성벽 기초부에서 삼국시대 이른 시기에 속하는 연질무문토기(軟質無文土器. 무늬없는 무른 토기) 파편과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검은색이 돌고 겉면이 맨질맨질한 토기) 조각이 확인됐다는 사실이다.

서영일 책임조사원은 "아직 조사 초기단계라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죽주산성이처음 축조된 시기를 삼국시대 전기로 볼 수도 있게 하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죽주산성이 처음으로 문헌에 확실히 등장하는 것은 후삼국-고려초 정국의 혼란기 때 죽산박씨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을 때였으며, 그 이후 역사에서는 몽고의 침략에 항거한 곳으로 유명하다.

성곽 안쪽에서 후삼국-고려초 유물이 다량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伯士'(백사)와 '官草'(관초), '凡草'(범초) 및 '大中◆◆'(대중◆◆)등 각종 글자를 새긴 명문(銘文) 기와류가 포함돼 있다.

이중 '伯士'는 최근 익산 미륵사지 해체 조사과정에서 확인됐고, 인근 봉업사(奉業寺)와 통일신라-고려초 금석문에서도 더러 확인되는 문구로, 책임자급 장인(匠人)을 지칭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官草'와 '凡草'는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며, '大中◆◆'은 다른 출토유물로 보아, 북송(北宋) 연호인 '대중상부'(大中祥符.1008-1016년)로 생각되고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