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경기회복에 초점을 맞춰 지난 12일 콜금리 인하를 전격 단행한 후 금융시장에서는 다음달에도 한은이 또 다시 금리를 낮출 것인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가급등으로 물가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재차 금리를 낮추기는 힘들 것이라는 신중론도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가 경기부양에 발벗고 나선 이상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 금리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특히 정부가 경기회복에 `올인'한 가운데 국제유가가 계속 폭등하면서 주변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점 역시 금리인하쪽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한은이 금리를 또 한차례 낮출 경우 초저금리 기조로 치달으면서 일본이 겪었던 것과 같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 콜금리 또 낮출 수 있을까 = 지난달 한은 금통위를 앞두고 시장전문가들은 고유가로 인한 물가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계속되는 경기부진을 감안할 때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데 거의 일치된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여지없이 깨졌고 한은은 `물가' 대신 `성장'을 택했다.

이 때문에 9월9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재차 금리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은이 물가안정이라는 정책목표보다는 경기부양이 더 시급한 문제라는 판단을 내린 이상 금리를 한차례 내린 후 어정쩡하게 다시 관망세로 돌아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 2001년 7월부터 9월까지 석달 연속 금리인하를 단행한 전례가 있다.
9월의 경우 미국 9.11테러의 여파에 대응, 무려 0.50%포인트나 하향조정해 콜금리를 연 4.00%로 낮췄다.
모두가 경기부양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 걸림돌은 없는가 = 종전까지 금리인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물가였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금리마저 내릴 경우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은 "수요측면의 물가압박 요인이 매우 낮으며 비용측면, 즉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오히려 더 크다"는 이유를 들어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유가만 진정되면 인플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고유가로 인한경기침체가 우려돼 금리를 낮춘다는 주장을 폈다. 유가급등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금리를 낮추는 `구실'이 돼 버린 것이다.

한은의 이러한 입장이 계속 견지된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그밖에 부동산 투기의 재발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한은은 오히려 부동산 경기의경착륙을 걱정해야할 지경이라면서 우려를 일축했다.
선진국의 금리인상 추세와 정반대로 금리를 낮출 경우 이른바 `디커플링'이 심화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은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이 곧 멈추게 될 공산이 크다"면서 이 문제 역시 걱정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문제는 `유동성 함정'이다.

▲ `유동성 함정' 걱정해야 하나 = 계속되는 금리인하에도 불구,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 민간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고 판단되는 한계수준까지 낮아져 돈을 풀고 금리를 인하해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금리를 낮춰도 향후 경기를 우려하는 당국의 조치가 오히려 소비자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게 하고 이는 기업의 수입감소와 투자위축, 소비자들의 소득감소로 이어져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욱 낮춰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LG경제연구원의 송태정 부연구위원은 "경제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통화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현재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단정하는것은 곤란하지만 금리인하에도 불구, 소비진작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은 우리경제가 이러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계층들은 금리인하에 따른 소득감소가 불가피하기때문에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소비는 더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오게된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금리인하에 따른 소비진작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투자측면에서는 금리인하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금리 때문이 아니라 자금은 풍부하지만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기 때문이며 금리를 더 낮춰봐야 성과는 없이 유동성 덫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더욱 심하게 누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연구위원은 "유동성 함정의 우려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우려가 당장 현실화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유동성 함정보다는 신용경색으로 인해 자금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깨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 연구위원은 "금리인하에도 불구, 투자.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금융기관이 중소기업과 비우량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대기업들이 풍부한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며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기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