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이 부친의 친일행적과 이에 대한 '거짓말 파문'으로 18일 사퇴함에 따라 의장직을 이어받게 된 이부영(李富榮) 상임중앙위원은 재야출신으로 3선의원 경력의 원외인사이다.

신임 이 의장은 지난해 7월 김부겸(金富謙) 김영춘(金榮春) 안영근(安泳根) 의원, 이우재(李佑宰)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시 당밖 개혁세력인 신당연대에 참여한 뒤 열린우리당에 창당멤버로 참여했다.

이어 그는 지난 1월11일 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정동영(鄭東泳) 신기남(辛基南)전 의장에 이어 3위를 차지함으로써 당헌.당규에 의해 자동으로 의장직을 넘겨받게됐다.

지난 91년 정계 입문후 주로 비주류 성향의 정치노선을 걸어왔던 이 신임 의장은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원외라는 약점에도 불구, 집권여당의 `대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정치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됐다.

1942년생인 이 신임 의장은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광주학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등으로 재야활동을 하다 여러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특히 신임 이 의장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용산고등학교 10년 선배이자서울대선배이기도 하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당과 정부의 수뇌부에 포진함으로써향후 당정간 조율이 원만하게 이뤄질 지 주목된다.

이 의장은 지난 91년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정치권에 진입해 92년 14대 총선에서서울 강동갑구에서 당선된뒤 15, 16대 등 내리 세차례 당선됐다.

특히 그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후 민주당의 다수세력을 이끌고 탈당,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 이기택(李基澤) 전 민주당 총재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러나 그는 97년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가게된다.

노 대통령, 김원기 국회의장, 원혜영(元惠榮) 의원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중심세력은 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원한 반면, 이 의장은 조순(趙淳) 당시 민주당 총재,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등과 함께 통합민주당 잔류파를 이끌고 신한국당과의 통합에 나선다.

즉 그는 97년 대선과정에서 `꼬마 민주당'의 뒤를 이은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 창당되자 한나라당에 합류,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지원하게 된다.

이후 그는 99년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거쳐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이회창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난 4.15총선 때 낙선한뒤 와신상담하면서 권토중래를 꿈꿔오면서 당내각종 공개회의에서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등 당지도부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등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특히 이달초 천 원내대표가 일본을 방문해 "친일진상규명법은 순수 국내 문제다"고 발언하자 "마치 그것이 `국내용'이라고 한 발언은 적절치 않다"며 천 원내대표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또 "서재필 선생과 고산 윤선도는 어려울 때도 국왕에게 목을 내놓고 상소를 하고, 심지어는 아무리 벼슬을 준다고 해도 벼슬을 거절하면서 초야에서 올바른소리를 했다"며 당 지도부에게 소신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신임 의장은 최근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대표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정 그렇다면 조사대상에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뺄 수도 있다"며 현실적인 접근을 했다.

그러나 당내 역학관계를 감안할 때 이 의장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신기남 의장 사퇴 이후 당지도체제와 관련해 물밑 신경전을 벌였던 당권파와 관계정립, 기간당원 문제로 이견을 보이고 있는 당내 다양한 계파들에 대한 조정등 만만치 않은 숙제를 안고 있다.

▲서울(62) ▲서울대 정치학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 ▲민주당 부총재 ▲한나라당 원내총무.부총재 ▲국민통합개혁신당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우리당영입추진위원장 ▲우리당 상임중앙위원 ▲14,15,16대 의원

(서울=연합뉴스) 전승현기자 shch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