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브라만의 제자들이 강변에서 제사에 쓸 염소를 씻기는데 염소가 웃다 울다 하면서 "너희 스승께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스승 앞으로 데려갔다.


"저는 오래 전 브라만이었는데 희생 제사를 집전하며 염소 한마리의 목을 벤 업 때문에 5백 생을 염소로 살았습니다.


이번 생이 마지막이니 오늘로 벌을 다 받고 사람의 생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아주 잘됐구먼.그런데 왜 울지?"


"선생님을 생각해서지요."


"걱정 마라.죽이지 않을 테니."


그러자 염소는 또 한번 웃었다.


"업의 바퀴는 멈출 수 없으니 오늘 저는 죽게 돼 있습니다."


브라만은 염소를 풀어줬다.


그러나 염소가 덤불을 뜯어먹으려고 절벽 쪽으로 목을 쭉 내미는 순간 벼락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염소의 목이 잘려버렸다.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에리얼 글룩리크 지음,임희근 옮김,김영사)에 나오는 두번째 이야기다.


이 책은 인도의 옛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전하는 산스크리트 문학 전문가의 명상서.


남인도의 순례도시 마이소르에는 차문디 언덕으로 오르는 1천1개의 돌계단이 있다.


여행자인 '나'는 그 언덕 아래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맨발로 서 있는 '나'를 구도자로 오인한 노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맨발로 산을 오르는 아픔도 잊을 것이라며 함께 계단을 오르자고 말한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는 어느새 인생의 의미와 지혜의 언덕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을 구해준 원숭이를 잡아먹으려 했다가 죄책감 때문에 병을 얻어 문둥이가 된 숲속의 사내 얘기에서 '모든 것은 하나의 생각에서 온다'는 진리를 깨닫고 온 세상을 다스리겠다며 길을 떠난 여덟 형제 이야기에서 '진실은 발 아래 있다'는 섭리를 발견한다.


마침내 8백 계단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마지막 장면은 천천히 언덕을 오르는 것과 바람처럼 달려 내려가는 것이 결국 인생의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라는 걸 '마음의 눈'으로 비추는 백미다.


3백68쪽,1만1천9백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