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혁명의 발상지로서 강력한 노동 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노조가 현실의 벽에 부닥쳐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노조의 파업이 연례 행사처럼 벌어지는 프랑스에서 올해도 어김 없이 교통과 에너지 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해 2004 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투르 드 프랑스)에 차질을 빚고 대통령궁에 전기 공급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노조도 국제 경제환경 변화와 기업의 세계화 논리에 밀려기존의 입장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특히 최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위협받으면서 프랑스 노동 운동의 성과물인 주35시간 노동제가 흔들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베니시외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 로버트 보쉬 노동자들은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주당 36시간으로 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820명의 보쉬 노동자들은 주당 노동시간 1시간 연장, 보너스 삭감, 3년간 임금동결 등을 골자로 하는 사측의 제의에 대해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 투표에서 90% 이상이 찬성할 경우 보쉬 사측은 300명의 인력을 감축하려던당초 계획을 수정해 190명은 해고를 철회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도 강제로 해직시키지않게 된다.
만약 노동자들이 이 조건을 거부하면 보쉬측은 생산 라인을 체코로 이전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 노동계는 보쉬가 처음으로 이 같은 최후통첩을 발한 것보다 노동자들이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 것에 더욱 놀라고 있다.

이 같은 상황 변화는 단순하게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변화된 국제 환경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구촌 경제는 노동력이 남아돌고 있으며 저임을 감수할 노동자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에 새로 가입한 10개국은 대부분 동유럽 지역에 몰려 있으며 이들국가의 노동력은 고용에 목말라 있다.
프랑스 노동자가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일자리는 대거 동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보쉬 노동자들이 회사측의 제의를 수용할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프랑스연합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은 마땅치 않은 표정이다.

CGT는 보쉬가 궁극적으로 그 동안 프랑스가 이룩한 사회보장, 특히 주 35시간노동제를 위협하는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CGT의 한 간부는 "보쉬는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35시간 노동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 노동 시간 연장 논의가 불거진 이유 중 하나로 지난 해 여름 사상유례 없는 폭염으로 노인 1만5천명이 사망한 사건이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한 연구보고서는 프랑스에서 성역처럼 존재하는 광적인 여름 휴가 열풍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8월은 빵집 주인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캉스를 떠난다.

의료기관 종사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기간에는 의사들도 병원 문을 닫고 해변으로 떠나고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정상적인 활동을 중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이 폭염으로 사경을 헤매었지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희생이 늘어난 것이다.

프랑스 보건부의 의뢰로 이뤄진 이 연구는 35시간 노동제가 희생자를 늘리는 데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인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종사자들이 휴일에 더 많이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베니시외<프랑스> AP=연합뉴스) songb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