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이 짜릿한 순수한 사랑이야기의 작품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읽힌 것은 아마도 박계주의 '순애보'가 아닌가 싶다.

1938년 매일신보의 현상공모에 당선된 이 소설은 이듬해 8개월간 신문에 연재된 뒤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됐는데 처녀 총각 할 것 없이 다투어 찾는 바람에 소동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밤마다 베갯머리를 적신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우연히 알게 된 여인을 찾아간 주인공(문선)은 때마침 그녀를 살해하고 나오는 범인의 꽃병에 맞아 실명을 하고 살인누명까지 뒤집어 쓴채 사형언도를 받는다.

얼마 후 범인의 자백으로 석방된 주인공은 시골로 내려가 울적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어릴적 첫사랑을 나눴던 애인(명희)이 찾아와 "당신의 눈이 되어주겠다"며 결혼을 청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따른다며.

못 이룬 사랑이야기는 항상 우리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간 비련의 사랑이 그렇고,로미오와 줄리엣의 미완의 사랑도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랑 때문에 그리고 사랑을 위해 목숨마저 버리는 상황을 접하면 누구나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곤 한다.

최근 '노부부 58년의 순애보'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담배사고 양복 살 돈'을 벌기 위해 사할린으로 떠났던 경북 고령의 한 노인이 58년간을 수절한 고향의 부인과 재결합하기 위해 그곳 생활을 미련없이 청산하고 귀국했다는 것이다.

부인은 구소련체제 아래에서 오갈 수 없는 남편과 항상 꿈속에서 대화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백년해로의 약속을 지킨 '현대판 순애보'가 아닐 수 없다.

"여자에게는 한 남자만 있어야 한다"는 부인의 말도 큰 공명이 되어 가슴에 다가선다.

요즘 이웃 일본에서도 소설이긴 하지만 남녀고교생의 애절한 러브스토리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세파에 물들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실이든 소설이든 지고지순한 사랑은 우리의 정신적인 공허감을 메워주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