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예산을 전용한 혐의로 2001년 기소된 이후 3년 6개월간의 지루한 재판 끝에 5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은 복잡다단했던 재판과정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강씨는 천신만고 끝에 징역 5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1심 판결을 뒤집고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입장을 의식한 탓인 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강씨는 법정을 나온 뒤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부딪히자 미리 준비한 듯 "오늘 법원의 결정으로 저는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죄' 심경을 밝혔다.

강씨는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 등 YS에 관한 질문이 쏟아지자 "할 말이 없다"며 황급히 법원을 빠져나갔다.

강씨와 함께 무죄선고를 받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아예 처음부터 취재진의 질문을 외면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법원을 떠났다.

김씨는 이날 결과적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YS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못하고 `원치않는' 무죄를 선고받은 탓인지 한껏 풀죽은 모습이었다.

한편 무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들보다 3년 이상 재판을 관여해 온 변호인들이 은행에 대한 계좌추적 등 필사의 노력 끝에 무죄선고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고무된 표정이었다.

상기된 표정의 강씨 변호인 정인봉씨는 "무엇보다 1심 재판부가 은행에 대한 사실조회 요청을 거부하고 강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을 때 가장 억울했었다"며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여 은행에 대한 계좌추적 등을 통해 자금의 실체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 기쁘다"고 말했다.

장기욱씨도 "이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며 "사법부에 의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으니 김 전 대통령도 `당시 실정법을 어기고 돈을 과도하게 쓴 것은 사실'이라는 정도의 말은 해야 한다"며 기세등등한 표정이었다.

한편 정 변호사는 "강씨는 끝내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나와 장 변호사가 악역을 맡아 김 전 대통령과 관련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강씨는 매우 섭섭해 했지만 결국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됐다"며 강씨를 (YS로부터) 끝까지 보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정락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 당시 강싸에 대해 피의자 신문을 한번도 하지 않았고 강씨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기소를 했다"며 "그때 검찰이 한번이라도 조사했다면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들은 "이번 판결은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민사소송에도 유리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며,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당사에 걸린 가압류에 대해서도 이의신청을 하겠다"며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