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모임에서 대통령에게 현 정부의 5대 개혁대상이 삼성·언론·사법부·서울대·강남이냐는 질문을 해 화제가 됐다.

개혁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특정기관이나 단체가 아니라 문화나 관습처럼 무형의 것이라면 공략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그래서 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대상의 설정이다.

사회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하위구조를 네트워크라고 한다.

네트워크란 그 사회의 구성요소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구성요소는 학교나 기업,관청 같은 기관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다.

구성요소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어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방법과 과정,방향 등을 총괄해 네트워킹 메커니즘이라 한다.

그 사회에 어떠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인가는 그 사회에 내재돼 작동하는 네트워킹 메커니즘의 모습이 어떤가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시스템의 경쟁력은 구성요소의 경쟁력과 네트워킹 메커니즘의 효율성이 동시에 작용해 결정된다.

우리 사회시스템이 개혁 대상이라고 했을 때 구성요소 뿐 아니라 네트워킹 메커니즘도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면 구성요소처럼 대상이 명확하다고 해 개혁하고,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킹 메커니즘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면 개혁의 알맹이가 빠진 것일 수 있다.

새로운 네트워크가 얼마나 자주 건전하게 형성되느냐가 사회시스템의 총체적 역동성을 결정한다.

우리 사회는 전형적인 농경사회 시스템 전통이 불과 40년 전까지 유지됐다.

새 네트워킹의 필요성이 매우 적은 시스템이 유지되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회 운영 패러다임이 필요해졌다.

문제는 외형적 사회시스템이 바뀌면서도 시스템의 개선과 유지에 가장 중요한 네트워킹 메커니즘은 전혀 바뀌지 않은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우리 네트워킹 메커니즘 부재의 단적인 증거가 2인칭 부재다.

너,자네,너희,당신,그대,자기,여러분,제군,댁들처럼 가짓수는 많지만 이미 상대방과 나의 사적인 관계가 충분하게 진전돼 적어도 나이와 직급의 상하관계가 명확하게 설정된 후에나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영어의 "Is this your car?"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대화하는 두 사람의 사적관계에 따라 "이거 네 차니?"에서 "이거 어르신의 차입니까?"까지 10여가지의 다른 번역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가다 다른 사람이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대부분 "이거 당신 손수건입니까?" 대신에 "이거 아저씨 것인가요?"로 물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적관계의 사전 설정없이 2인칭이 가장 자연스럽게 쓰이는 경우는 싸울 때다.

"당신이 뭔데 나보고 당신이라 하는 거야?"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2인칭의 부재는 우리 사회 네트워킹 메커니즘의 문제를 보여주는 일각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해보면 '아는 사람'이란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새로운 거래를 열 때 상대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사업허가에 문제가 있을 때 주무관청에 '아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도 많은 접대비용과 검은 돈이 '아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다.

인간관계는 공적관계와 사적관계로 나뉜다.

공적관계와 사적관계가 혼동되면 사회가 부패하고 효율이 떨어진다.

대체로 서구의 사람들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과의 '특별한 사적 관계'에 따라 공적인 관계도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병원을 가더라도 '아는 사람'이 전화 한통을 넣어줘야 대접받는 사회로 굳어지게 되고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아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우리 사회 네트워킹 메커니즘의 모습이다.

결국 한쪽 방향으로의 단선적인 연장에서 인간관계가 진행된다.

우리 사회가 '네트워크'로 발전하지 않고 '줄'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이유다.

개혁대상 언론의 문제가 그들 고유의 잘못 뿐만 아니라 2인칭이 없어서 그렇게 왜곡 발전했을 가능성도 시스템 이론에서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