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가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중소건설업체는 물론 대형건설업체들까지 민간건축 분야의 신규 수주를 포기하고 있다. 수익성이 1백% 보장되는 사업만을 골라 간혹 수주할 정도다. 특히 일부 중소건설업체들은 아예 신규 수주 금지령까지 내려놓고 있다. 주택건설경기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미분양에 따른 자금난으로 부도위기에 직면할까 우려해서다. 중견주택업체인 A건설 김모 개발사업팀장은 최근 담당 임원에게 수도권 신규사업 수주 건을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당담 임원은 "지금이 새 사업 벌일 때냐"고 질타했다. 최근 2~3년간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해 온 B회사의 L사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당분간 신규 사업 수주는 덮으라"고 한 뒤 "대신 현재 벌려 놓은 사업이나 제대로 마무리하라"고 엄명했다. 이처럼 주택시장에서 업체들이 신규 수주를 크게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전문가들은 향후 공급부족에 따른 가격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공급이 본격적으로 위축되고 있어 2∼3년 후 부동산가격이 또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건설사 신규수주 '올스톱' W건설 대표는 최근 직원조회에서 "올 하반기 건설경기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하다"면서 "수익이 1백% 보장된게 아니라면 신규사업에 관해선 보고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재개발ㆍ재건축 등 주택 신규개발사업 대신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둬 경영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S건설 사장도 최근 직원들에게 "지금은 신규수주를 늘릴 때가 아니다"면서 "수주보다 미분양 해소에 주력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사 개발팀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신규수주를 막아놓았기 때문에 재건축조합에 대한 자금지원도 완전히 끊긴 상태"라며 "건설사 하청을 받는 도시정비사업체(컨설팅업체)나 아웃소싱 인력들은 일감이 없어 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최근 부산 대구 등지의 시행사(부동산개발회사)들이 의뢰해 온 1백여 건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뒤 단 두 건만 수주를 결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1∼2달 사이 시장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에 일단 관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건설업체인 W사의 경우 주택 토지 등 사업시행부서 인력을 영업마케팅 쪽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인력재배치를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 시행ㆍ건설업계 위기감 팽배 시행업계와 주택건설업계가 부도위기에 떨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어서다. 올들어 지난 5월까지 부도난 주택건설업체 수도 벌써 22곳에 달하고 있다. 업계에선 '중견업체인 B사는 모 프로젝트 분양에 실패하면 부도날 것'이라는 등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건설회사들이 신규 수주를 포기하면서 시행사들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시공사인 건설업체들이 사업성 검토를 까다롭게 하면서 사업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부 시행사는 시공사를 정하지 못해 수억∼수십억원의 토지매입 계약금을 날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실제로 C사는 작년 말 아파트 건립을 위해 30억원을 주고 강원도 땅을 계약했지만 4개월째 사업착수를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사업착수를 서로 미뤄서 그런지 최근들어 시행사 사업계획서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현재 사업계획을 검토하는 팀을 네 개 운영하고 있는데 일단 보류됐던 프로젝트가 다른 팀에 또다시 접수되기도 한다"면서 "신행정수도 호재가 있는 충청지방이나 일부 비투기과열지구는 그나마 낫지만 부산 대구지역 등의 사업은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전했다. 김홍배 대한주택건설협회 부회장은 "시행 초기단계에서 금융조달에 실패한 부동산 개발업체나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주택업체 등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 부도기업 수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