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외동 통일중공업 차량차축공장. 작업라인을 따라 상용차용 차축을 조립하는 근로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부품을 끼우고 볼트 등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커버를 씌우는 공정으로 이어지는 등 쉴 틈이 없다. 지난해 파업이 한창이었던 7~9월과는 완전 딴 모습이다. 노조의 파업에 회사의 직장폐쇄가 맞물리면서 당시 작업장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노동조합이 정문을 봉쇄하고 회사측이 휴업조치를 내리는 등 갈등이 확산되면서 작업라인은 말그대로 황무지처럼 버림받았다. 그러던 작업장이 지금은 활기에 넘쳐 있다. 박재석 경영기획실장은 "임금동결로 우선 회사를 살리고 전환배치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회사측 제안을 노조에서 받아들여준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성 노사분규 사업장이던 통일중공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경영정상화 대협상'을 타결하면서 부터. 임금동결과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되 신규사업 진출과 전환배치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자는데 노사 양측이 합의했다. 회사설립 20여년 만의 첫 무분규 임ㆍ단협 타결의 성과는 우선 실적 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매출과 생산성이 지난해에 비해 10%이상 늘었다는게 회사측 설명.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라는 회사측의 경영비전도 하나 둘 실현되고 있다. 지난 4월말 인수한 경기도 안산의 대화브레이크가 내달초면 창원공장으로 이전한다. 지난해 1백억원대 수준인 매출을 올해 1백70억원으로 끌어올리는게 목표다. 지난 5월 중국 선양의 진베이(金杯)기차와 계약을 체결한 차축 생산 합자회사도 오는 18일 현지에서 기공식을 갖고 본격 출범한다. 2005년부터 연간 28만축 규모로 승합차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용 차축을 생산할 예정이다. 통일중공업은 여기에 더해 대우종합기계 방산부문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신규사업이 늘어나면서 지난 4월 구조조정을 당해야 했던 '휴업휴가자' 2백50명은 순차적으로 새 일자리를 얻고 있다. 박 경영기획실장은 "노사안정 덕택에 회사가 조금씩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중공업의 노사협력은 '도요타식 노사합의'로 평가받고 있다. 수년간 최고실적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을 동결한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사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순익을 내고도 올해 임ㆍ단협에서 임금을 동결하는 기업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내수부진과 고유가 등으로 향후 경기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회사부터 살리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섬유업체인 태광산업은 노조에서 먼저 임금동결안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3백32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노조는 과도한 요구를 자제했다. 지난해 비교적 임금인상률이 높았던 탓도 있지만 올해 화섬업계 시황이 갈수록 악화된게 주 요인이다. 하만호 노조 사무국장은 "지난 98년과 2001년 파업을 벌인 결과 거래처도 잃고 고부가제품인 스판덱스 1위 자리를 효성에 내주는 등 피해가 컸다"며 "올해도 이러다간 노사가 공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조는 내년 경영성과가 더 악화되면 삭감안을 낼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화섬이나 대구의 섬유업체인 미광다이텍, 쌍호염직 등도 비슷한 이유로 올해 임금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워크아웃 중인 새한은 3년째 동결했다. 새한의 홍대용 노조 사무국장은 "올해 수익을 내더라도 2∼3년 더 지켜보고 앞으로 독자생존하리라는 자신이 생기면 임금인상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화전기 영창악기 등 일자리와 임금동결을 빅딜한 곳도 적잖이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갈등을 빚던 삼화전기 노사는 5년 고용보장 조건으로 임금을 동결키로 했으며 파업과 직장폐쇄 사태를 빚었던 영창악기도 2년간 고용보장을 전제로 임금동결에 전격 합의했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에서도 대기업 임금을 동결하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대기업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 대표인 서경석 목사는 "대기업 노조가 강한 교섭력을 토대로 임금을 계속 인상시켰고 기업은 악화된 채산성 극복을 위해 하청업체 단가절감, 아웃소싱 등을 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며 "그동안 기업들은 도덕성 문제로 설득력을 얻지 못해 이같은 상식적인 주장을 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민모임은 각계 인사로부터 서명을 받는 등 사회적 반향이 커지고 있다. 임금동결은 이제 노사간 '상생(相生)'을 넘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 공존의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창원=김태현ㆍ정태웅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