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 지명자는 재야 민주화운동에 젊음을 바친 대표적인 투사 출신의 국회의원이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과 함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고, 80년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다시 감옥에 갇히는 등 가시밭길을 걸었다. 지난 88년 13대 총선에서 평민당 공천으로 당선된 뒤 내리 5선을 기록하며 당내에서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이 총리 지명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다. 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이나 맡을 정도였다. 특히 선거전략과 기획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94년 첫 지방의회 선거 때는 조순 서울시장을 보필했고 이듬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하면서 시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 총리 지명자는 99년 교육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과 월간 모의고사 등을 폐지하는 등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당시 고교 1학년생들이 2002년 수학능력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기록, '이해찬 세대'(학력이 떨어지는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어서 '송곳' 또는 '면도칼'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공무원사회에서 한때 '기피 1호'로 꼽히기도 해 총리로서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주목된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 < 李총리 지명자 약력 > 1952 충남 청양 출생 1971 용산고 졸업 1972 서울대 사회학과 입학 1974 민청학련사건 투옥 1980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투옥 1995 서울시 정무부시장 1998 교육부 장관 2000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2002 제16대 대통령선거 기획본부장 2003 열린우리당 창당기획단장 5선(13~17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