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小泉) 총리의 마술은 언제까지 계속될것인가' 재임 3년을 넘겨 전후 6번째 장수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정치수완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조야는 우선 여론의 흐름을 앞당겨 읽는 그의 탁월한 정치 감각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난관조차 누구도 생각지 못한 돌출행동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는 그의 정치수완에 일본 언론의 베테랑 정치부 기자들은 수십년의 취재경험이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며 무력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칼럼니스트인 다세 야스히로(田勢康弘)는 고이즈미총리의 뛰어난 정치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난달의 재방북을 들었다. 얼핏 돌출행동처럼 보이는 ▲외교관례를 벗어난 일방적인 2차례의 북한 방문결정 ▲납치자가족연락회 대표들에게 호되게 당하는 장면을 실무진의 반대를 무릅쓰고공개토록 한 결정 ▲사면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탈영병 출신 찰스 젠킨스에게 장시간 귀국을 설득한 일 등이 모두 여론을 앞서 읽는 뛰어난 감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먼저 2차례에 걸친 북한 방문. 정상외교에서 상대방의 답방없는 일방의 재차 방문은 외교상식에 어긋난다.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조야는 대부분 고이즈미 총리의재방북에 반대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이 사임한 진짜 이유도 겉으로 내세운 연금보험료 미납때문이 아니라 총리의 재방북을 둘러싼 의견차이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납치피해자 8명 가운데 5명만 동반귀국해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방북전부터 8명 동시귀국에 대한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았던 언론은 5명 귀국으로 끝난 결과에 대해 대부분 비판적이었다. 납치자가족회가 `최악의 결과'라며 반발한 것은 이런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지만 정작 일반 국민의 평가는 고이즈미 총리의 승리였다. 각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 안팎이 재방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0%대로떨어졌던 내각지지율도 50%대로 높아졌다. 가족회 대표들에 대한 방북결과 설명 장면 공개결정도 마찬가지다. 고이즈미 총리는 잔뜩 벼르고 있는 가족회 대표들로부터 험한 꼴을 당할 것을 우려한 실무진의 비공개를 제의를 일축했다. 가족회측이 "예상했던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이라거나 총리의 방북을 "어린애 심부름도 아니고..."라며 거칠게 몰아 붙이는 장면이여과없이 TV로 방영됐다. 여론의 반응은 이번에도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항의메일과 전화가 쇄도하는 등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것은 가족회측이었다. 납치자 구출의원연맹 회장인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전 경제산업상도 방북성과를 "겨우 5명만 데려오는 비참한결과"라고 폄하했다 내부비판에 시달린 끝에 발언을 수정하기도 했다.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연출의 백미는 단연 젠킨스의 귀국을 설득한 부분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1시간여에 걸쳐 젠킨스를 설득했다.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와정상회담에 할애한 시간과 맞먹는 파격적인 시간할애다. 젠킨스가 미국의 형사소추를 우려해 귀국을 계속 거부하자 나중에는 내가 `보증한다(guarantee)'고 종이에 써보이기까지 했다. 미국은 젠킨스를 ▲탈영 ▲탈영교사 ▲반미영화 출연 등의 혐의로 처벌한다는 방침. 이런 사정은 고이즈미 총리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을 계속한 부분이 바로 보통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고이즈미 총리다운 발상이다. 젠킨스가 혹시 설득을 받아들여 일본으로 왔더라면 총리개인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가 곤란한 사태에 빠질 뻔 했다. 이라크에서 아직 전쟁이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탈영병 사면요구에 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이 이 요구를 들어주면 부시 대통령은 선거전에서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이뻔하다.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는 고이즈미 총리가 장시간 젠킨스를 설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몇가지 증언을 종합하면 총리는 부시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동반귀국자가 `8명 전원'이 아닌 `5명'으로 국민을 납득시키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는게 총리의 판단이었다. 젠킨스가 끝까지 귀국을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꿰뚫은 끝에 나온 설득이었고 결과는 보기좋게 들어 맞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최근 주위에 "총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리 주변에서는 "반쯤은 진심인 것 같다"고 전하고 있다. 천하의 고이즈미 총리조차 `이제 좀 지쳤나' 싶지만 사실은 전혀다르다. 총리는 매일매일을 기분좋게 즐기며 보내고 있다. 총리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각료는 "총리는 국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언제나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면서 "전문가일수록 총리와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과는 언제나 총리가 말한 대로 된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2006년 9월 30일. 7월에 실시될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총재 임기를 채우면 1천973일을 총리로 재임할 수 있게 돼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전 총리에 이어 역대 3번째 장수총리가 된다. 전후 최장수 총리였던 사토 전 총리의 재임기록은 2천798일, 일본 현대정치의뿌리인 요시다 전 총리의 재임일수는 2천616일이다. (도쿄=연합뉴스) 이해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