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11시.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 있는 한 의류업체 물류창고 앞.사람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창고 관계자 분 아무도 없어요?" 새벽 배송 때문에 일찍 눈을 붙이려고 했던 의류업체 직원이 무슨 일인가 싶어 손전등을 들이댔다. "저기, 일산에 있는 XX백화점 구매담당자인데요. 내일 여는 여성 의류 행사전에 물량이 '펑크' 나서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그는 몇 군데서 허탕을 치고 이 곳을 찾았다며 의류업체 본사 영업담당자와 휴대폰 통화를 시도했다. 물량과 가격을 놓고 협상을 벌이던 그는 새벽에 물건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발길을 집으로 돌릴 수 있었다. 백화점 업계에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한 미끼상품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신상품 매출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반해 '초특가' '이월' '균일' '기획' 상품전에는 고객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사를 열지 않으면 고객들이 아예 발길조차 끊어 백화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업체들은 하소연한다. 하지만 의류업체들이 불황에 대비해 2∼3년 전부터 생산량을 30∼40% 줄였고, 신도시 등 수도권에 할인매장인 아울렛이 많이 들어서 이월상품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 가을·겨울 시즌부터 시작된 이월상품 물량 부족이 올들어서는 더욱 심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의류 브랜드별로 3백∼3백50장 정도는 돼야 대형 행사를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1백장 정도밖에 준비하지 못하죠. 컨셉트가 맞는 브랜드를 모은 '연합전'이나 원가를 3분의 1 정도로 낮춘 '기획상품전' 등으로 메워 나가는 실정입니다."(그랜드백화점 양재봉 바이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월상품에 관한 한 납품업체의 파워가 더 커지는 기현상이 생기고 있다. 롯데백화점 신사복 매입팀의 이성재 바이어(과장)는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이월상품을 확보하기 위해 납품업체와 유대관계를 튼튼히 다지고 있다"며 "올 들어 1주일에 납품업체를 두 번 이상 방문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성 있는 행사의 경우에는 납품업체에 마진을 7∼10%포인트 더 주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백화점 바이어는 "여러 점포에서 동시에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물량이 잘 나가는 쪽으로 상품들을 옮겨 달라고 납품업체에 부탁한다"며 "워낙 물량이 달리다보니 입점하지 않은 브랜드에도 행사에 참여해 달라고 매달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백화점들은 그러나 "이월상품 행사가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상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게 문제"라며 소비 불황 장기화를 걱정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