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증가 현상은 수도권 대부분의 새 아파트 단지에서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잔금을 치르지 못한 계약자들은 계약 해지로 계약금마저 날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계약금을 포기하며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체 잔금은 물론 중도금 대납 부담까지 떠안게 된 주택건설 업체들은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올해 말까지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이 이어지면서 수도권의 새 아파트 입주율 하락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입주율 하락→건설업체 부도→주택공급 감소→주택가격 급등→부동산 거품(청약열기)→입주율 하락' 등의 악순환이 이어질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 '빈 아파트' 갈수록 늘어 지난 29일 오후 9시께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S아파트 1차 단지 앞. 입주를 시작한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예비 입주자를 겨냥한 이삿짐센터 케이블TV 커튼ㆍ열쇠 업체들의 판촉물이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이 아파트는 입주율이 50%에 못미치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입주한 인근 H아파트와 N아파트의 입주율도 아직 60%에 머물고 있다"며 "남양주 전체와 구리시 일대 입주단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경기 화성시 태안읍 G아파트 11단지(5백98가구) 역시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몇몇 동은 불이 켜진 집을 찾아보기 힘들 었다. 입주기간이 두 달 이상 된 단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단지의 잔금 납입률은 57%에 불과하다. 경비원 최모씨(63)는 "열쇠를 받아가고도 입주하지 않은 집이 수없이 많다"며 "학생들이 밤에 나다니기 무섭다고 하소연할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다른 지역에서도 입주율 하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3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 광주시 초월면 B아파트(5백16가구)와 D아파트(5백5가구)의 실제 입주율은 40% 미만이다. 같은 시기 입주가 시작된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H아파트(2백12가구) 역시 전체 가구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올들어 입주 물량이 집중된 용인 신봉 및 동천지구에서도 빈 아파트가 넘쳐나고 있다. ◆ '빈 아파트' 왜 늘어나나 "계약금이 얼마 안되길래 웃돈(프리미엄)을 노리고 분양받았지만 이젠 전매도 안되고 잔금을 낼 여력도 없어 답답하네요."(일산동 D아파트를 분양받은 강모씨). 최근 입주한 아파트는 지난 2~3년간 부동산 열기가 한창일 때 분양된 단지들이다. 그러나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분양권 전매가 제한(투기과열지구 지정)되고 거래도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꼼짝없이 잔금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받은 실수요자들도 잔금을 못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팔거나 혹은 전세금을 빼내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지만 부동산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두 가지 방안 모두 힘들어진 상황이다. 남양주 오남읍 S아파트 인근 푸른솔부동산 관계자는 "인근 진주아파트(2천3백가구)에 살고 있는 S아파트 계약자들은 살고 있는 집을 못팔아 입주를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올들어 전세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은 것도 한 원인이다. 세입자를 구한 뒤 전세금을 받아 잔금을 치를 요량이었던 계약자들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집 주인은 2년 정도 대신 살아줄 세입자를 구하고 있지만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기존 주택의 전세 물량이 넉넉한 시장 상황에서 굳이 새 집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지난 몇 년간 수도권 택지들이 난개발되면서 도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규 입주단지들이 쏟아진 점도 입주율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드랜드힐의 한 입주자는 "서울로 진입하는 도로가 1개밖에 없어 서울 강북까지 출근하는 데만 1시간30분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또 새집증후군이 부각된 점도 새 아파트를 기피하는 요인중 하나다. 서욱진ㆍ조재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