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압구정동 로데오거리가 있다면 상하이(上海)엔 화이하이루(淮海路)가 있다. 이 곳 중심가의 팍슨(百盛)백화점 1층에 들어서면 '에스티로더' '랑콤'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들어찬 모양새가 서울의 여느 백화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한 가지. 한국에선 전문점에서나 팔리는 태평양 '라네즈'가 독립 매장으로 입점해 있다는 점이다. 라네즈는 팍슨백화점내 화장품 매출순위 '톱 10'에 꼽히는 인기 브랜드. 이달 들어선 노동절 연휴기간 벌인 프로모션에 힘입어 5월 셋째주까지 누적매출 1위를 기록했다. 태평양은 이 기세를 몰아 현재 43곳인 중국 라네즈 매장을 내년까지 1백10개로 늘릴 계획이다. 단 앞으로도 최소 2∼3년은 적자를 감수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2년전 상하이에 진출하며 현지 생산공장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도 비용이지만 브랜드 하나를 키우는데 최소 4∼5년은 걸린다는 판단에서다. 태평양은 현재 매출액의 약 30~35%를 수수료로 내는 고급 백화점에서만 라네즈를 판다. 현지 에이전트나 할인점 등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물건을 팔 수 있지만 '라네즈=고급스러우면서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백화점만 고집하는 것. 주요 백화점마다 무료 메이크업 교실을 운영하고 수시로 한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을 불러다 메이크업 쇼도 벌인다. 값싼 중국 현지 브랜드와 고가의 글로벌 브랜드 틈새에서 살아 남으려면 당장 이익내기에 급급하기보다 브랜드 인지도 제고가 먼저라고 보는 까닭이다. 태평양 라네즈의 '브랜드 마케팅'이 글로벌 브랜드들이 선점한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성공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기보다 출시한 지 몇달만에 땡처리 시장에 떠돌 제품만 양산하는 수많은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 아닐까. 상하이=이방실 생활경제부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