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잠들까봐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는 이로 동료의 팔을 깨물기도 했습니다." 항해중인 오징어채낚기 어선에서 불이 나자 동료들과 함께 바다로 뛰어든 뒤 9시간여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선양호(21t급.선장 김봉철.44) 선원 옥정식(48.속초시금호동)씨는 "지난 밤이 꿈만 같다"면서 몸서리를 쳤다. 옥씨 등이 조업을 위해 경북 울진군 후포항을 출항한 것은 지난 8일 오후 5시께. 한밤중에 조명을 이용, 오징어를 유인해 조업을 하는 채낚기 어선의 특성상 옥씨 등 선원 3명은 출항과 동시에 선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오후 6시 50분께 평소 유난히 잠귀가 밝다는 얘기를 들어온 옥씨의귀에 `펑'하는 소리가 들렸고 옥씨는 순식간에 선실밖으로 뛰어나갔다. 옥씨는 "선실밖으로 나가보니 불에 그을린 선장이 기관실에서 뛰어나오고 있었고 기관실은 연기로 가득차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옥씨는 나머지 선원들을 깨운 뒤 선장의 지시에 따라 고기잡이용 부이 등눈에 보이는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 가로, 세로 각각 1m 크기의 사각형 모양으로 물에 뜨는 구명보트 아닌 구명보트를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선장 김씨는 어업무선국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교신을 시도, 8-9초간 접속이 됐으나 그나마도 불길이 확산되면서 교신이 또다시 끊어졌다. 옥씨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눈에 띄는 물체를 모아 물에 뜨게끔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줄잡아 2분정도였고 교신도 8-9초만에 끊겨 시간이 조금만 늦었어도 구조요청도 못한 채 수장될 뻔 했다"며 한숨을 돌렸다. 차가운 바다로 뛰어든 선장과 선원 3명은 달도 뜨지 않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구명보트에 몸을 맡겼다. 이들은 구명보트에 매달린 채 멀리 육지쪽에서 보이는 어렴풋한 불빛을 발견,발로 헤엄을 치며 육지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2시간 가량 지난 뒤 선장 김씨는 탈진, 몸을 가누지 못하고 구명보트에서 떨어져 나갔다. 옥씨는 "선장이 떨어져나갈 때는 파도가 치는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선원들도 모두 지친 상태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때부터 선원들은 서로가 잠드는 것을 막기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목청껏노래를 불렀다. 옥씨는 "노래를 부르는 중에도 탈진한 동료들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동료의 팔을 이로 물어뜯기도 했다"고 말했다. 옥씨 등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친 것은 필사의 노력을 펼친지 9시간여만인 9일오전 4시 20분께, 사고지점에서 18㎞가량 떨어진 후포 동방 13마일 해상에서였다. 선원들이 입고 있던 야광 구명조끼가 구조요청을 받고 달려온 해경 함정의 서치라이트에 반사됐던 것. 선원들은 "구조선이 30분만 늦게 도착했더라면 아마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을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덕=연합뉴스) 이덕기 기자 duc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