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4일.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4대 그룹 구조본부장들을 만났다. 강 위원장은 첫 대면임에도 "경제단체장들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식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대한상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장들이 전날인 4월3일에 모여 출자총액제한제도(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그룹 계열회사가 순자산의 25% 이상은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제)의 완화 등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데 대해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다. 재계가 '당사자간 해결 원칙'을 지키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게 강 위원장의 생각이었다. 그는 기자들을 만나서도 "문제를 풀려면 서로 믿을 수 있게 행동해야 한다"며 재계를 비판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6일.공정위 정례 브리핑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연됐다. 강 위원장은 "(재계가) 풀 문제가 있으면 흉금을 터놓고 (공정위와)대화를 해야지 정치적으로 성명을 통해 풀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날 전경련이 출자규제로 인해 13개 규제대상 그룹 중 9개 그룹이 출자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은 데 대한 불만이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재계가 공정위 일정 하루 전에 번번이 '선제공격'을 한 셈이 됐으니 강 위원장의 못마땅한 심사를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재계쪽 얘기를 들어보면 나름의 사정이 없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공정위에서)출자규제로 인해 투자를 못한 사례를 가져와 보라길래 제출했는 데도,강 위원장은 언론에다 '(재계에)사례를 달라는 데도 하나도 내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자료 배포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측은 "재계가 진실성이 없다"고 일갈한다. "다른 회사 지분인수하는 게 무슨 투자냐.작년에 알아듣게 얘기했는데 공정위 브리핑 직전에 그런 얘길하는 저의는 무엇이냐"는 얘기다. '출자규제'를 놓고 공정위와 재계가 이견(異見)을 넘어서 '감정 싸움'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갈등을 풀기 위해서라도 양쪽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출자규제의 정당성과 폐해에 대해 토론하고 문제를 매듭지었으면 한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