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8일부터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2002년 가을 중국의 신지도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지는 북·중 최고 지도자들의 만남이다. 또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 한국의 총선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한·중·일 순방 후 1주일 내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한국,중국과 관련된 일련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시점에 타이밍을 맞추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대체로 그동안 다소 소원해 졌던 북·중관계 회복과 중국의 경제지원 확보,핵문제와 관련된 입장조율 등의 목적하에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김 위원장의 방중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의 제4세대 중국 지도부와의 상견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내부체제의 정비 절차를 완료한 중국 지도부는 출범한 지 2년이 돼가는 현시점에서 더 이상 북한을 방치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2001년 여름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에 나타난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관계는 대북한 영향력 감소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자아냈다. 또한 중국은 6자회담 중재국으로서의 영향력 과시와 북한체제의 변화 방향 확인이 필요했다. 2000년 2001년 두차례에 걸친 김 위원장의 방중은 경제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었으며 결과는 2002년7월의 개혁조치와 신의주 특별행정구 제정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새 경제 정책은 인플레이션과 물자부족,빈부격차를 악화시켰고 2003년 여름부터 북한의 개혁 드라이브는 주춤한 상황이다.더욱이 신의주 특구 개발방향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이견은 북한 경제개혁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북한은 자신들에 대해 적잖은 회의를 갖고 있는 중국지도부에 경제개혁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설득하는 한편,원유 등 에너지 지원을 요청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핵문제와 관련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북한 개혁의 성공을 지원한다는 명분하에 경제지원을 약속할 가능성이 크다. 핵문제는 중국과 북한에 있어서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미국의 체니 부통령은 방중때 파키스탄 핵전문가의 '북한 핵목격'설 등의 자료를 근거로 중국을 압박하고,'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검증가능하며,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고집했다. 중국 역시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단계적으로 보상과 핵문제 해결을 연계시킨다는 북한의 입장을 무시할 수도 없다.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동안 미국의 일방적 주장이 사리에 맞지 않음과 경제적 보상과 핵 포기의 단계별 병행 필요성을 역설할 것이다. 북한은 민주당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대선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면 이후의 상황은 불리할 것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 상황 악화와 부시행정부의 지지도 하락은 북한의 지연전략에 힘을 보탰다.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이 북한의 경제개혁과 핵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발걸음을 떼 놓기는 했으나, 아직 경제개혁의 고속도로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국제환경과 내부 경제의 공급 및 축적 능력이 미비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개혁조치는 무의미하다는 점을 북한 당국도 잘 이해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의 고속도로에 접어든 후에 일이 잘못되면 현재의 북한 지도부는 정책실패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핵문제처럼 북한의 경제 개혁도 '소 걸음' 양상을 보이기 쉽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에도 획기적인 경제개혁 조치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단지 신의주 개발방향에 대해서는 중국 희망대로 '수출가공구' 또는 '경제 특구(행정특구가 아닌)'로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핵문제와 관련,6자회담 실무그룹 회의는 조기 개최가 가능할 것이다. 북한 입장으로는 중재국인 중국의 입장을 살려줘야 하고,'단계적 병행 해결법'에 대한 홍보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역시 6자회담 관련 5개국이 권유하는 실무회의 개최를 무조건 외면키 어렵다.그러나 우라늄 농축형 핵개발계획을 의제로 다루는 문제와 선(先)핵포기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과 미국이 평행선을 달리는 실무그룹 회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