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만에 2명의 최고 지도자를 잃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단체 하마스가 새 지도자를 선출하고도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 추측이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이 암살된지 이틀만에 전격적으로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후임 지도자로 선출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하마스의본격적인 지하 잠적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신이나 란티시는 이스라엘의 표적공격을 피해 잠행하기를 거부했던 지도자들이다. 란티시는 지난달 야신의 추도행사에서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된다"며"나는 심장마비로 죽는 것 보다 아파치(헬기)에 의해 죽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신적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를 모두 잃은 하마스 지도부는 상당기간 잠행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정부가 가자지구 철수를발표한 뒤 제도 정치권 진입을 모색했던 전략의 일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하마스는 야신 피살 후 란티시를 가자지구 지도자로, 칼리드 마슈알 정치국장을해외 지도자로 하는 양두 체제를 유지해왔다. 하마스는 란티시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새 지도자를 선출해 지도부 공백을 방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도자의 안전을 고려해 신원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티시의 후계 인물을 둘러싼 추측은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와관련, 이스라엘군 라디오방송은 란티시 다음 서열인 마흐무드 자하르(59)가하마스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하마스 규정 상 지도자의 유고시 차석이 대신하게 된다. 자하르는 란티시 처럼 직업 의사이며 지난 해 9월 이스라엘의 암살공격을 피했으나 당시 장남을 잃었다. 또 다른 후보로 40세의 강경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지목되고 있다. 그는 야신이 살해되기 전까지 비서역할을 했으며 하마스 가자지구 대변인을 맡아왔다. 두 사람 모두 란티시의 죽음을 피로 보복하겠다고 천명했다. 자하르는 란티시사망을 애도하는 군중을 향해 "기회가 오면 대대적인 복수를 단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하마스의 통합 최고 지도자가 칼리드 마슈알(48)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하마스 정치국장인 마슈알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해외 지도부를이끌고 있다. 란티시는 지난달 새 지도자로 선출된뒤 자신과 마슈알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이며 마슈알은 하마스 최고 지도자이다." 자치지역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인 란티시가 하마스 서열 상 2위라고 스스로 낮춘 것이다. 란티시가 살해된뒤 하마스측은 성명을 통해 "칼리드 먀슈알의 요청에 따라 란티시의 후계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마스 지도부가 마슈알의 최고 권위를 인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스라엘 정부도 마슈알이 표적살해 다음 목표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기디온 제르나 무임소 장관은 마슈알이 시리아에서 활동중인 사실을 지적, "기회가 오면 시리아도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야신과 란티시가 암살되면서 마슈알은 명실공히 하마스 최고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지난달 야신이 암살되자 샤론 총리도 똑같이 암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적에게 똑같은 범죄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마슈알은 야신과 함께 1987년 하마스를 공동 창설한 7인 가운데 한명이다. 그로부터 9년 뒤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야신과 또다른 기연(奇緣)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1997년 9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그를 독살하려다 실패했다. 그는 모사드 요원들이 주입한 독극물에 혼수상태에 빠졌다. 격노한 후세인 당시 요르단 국왕은 이스라엘에 대해 모사드 요원들의 석방을 원하면 해독제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모사드 요원들의 석방 조건으로 수감중이던 야신을 풀어줬다. 요르단 당국은 5년 전 마슈알과 다른 하마스 지도자들을 불법활동 혐의로 추방했다. 이후 마슈알은 시리아와 레바논, 걸프 국가들을 돌며 망명 지도자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시리아가 미국의 압력으로 다마스쿠스의 하마스 본부 사무실을폐쇄한뒤로 마슈알은 공개석상에 모습을 점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얼굴 없는 최고 지도자로 하마스의 지하활동을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