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소용돌이친 지난 한 주를 보내면서 가장 크게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 중 한 명은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아닐까 싶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 속에서도 금융시장만큼은 외견상 '정치태풍'에 초연했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정치 논쟁으로 이쪽 저쪽으로 편이 갈려 혼돈스러웠던 와중에서도 주가는 상승 대세를 이어갔고,원화값도 강세를 지속했다. 1천여명의 주요 외국인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에게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에는 변함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e메일을 경제부총리 명의로 신속하게 발송했던 덕분인지 해외 시장에서의 한국물 금리와 주가도 안정세를 유지했다. 국내외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시 이헌재...'라는 찬사도 나왔다. 이쯤이면 한숨 돌려도 되겠다고 판단했는지,이 부총리는 지난 한 주를 정리하는 정례 브리핑에서 언론과 정부가 힘을 합쳐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논공(論功)'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과연 고비를 넘겼는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금융시장의 표면적 안정과 달리 실물경제는 나라 안팎의 여러 변수들에 시달리면서 속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연일 치솟고 있는 국제유가에 원자재 구득난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갈수록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승용차 자율 10부제 시행 등 1단계 비상대책을 발동했고,수급 차질이 심각한 일부 원자재에 대해 정부 비축물량 방출과 할당관세 인하 등의 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미 기업들은 골병이 들대로 든 상태다. 지난주 만난 한 중소기업인은 "작년 하반기부터 원자재 수급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 이미 사업을 접은 동료 기업인들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뒤늦은 움직임에 분통을 터뜨렸다. "실물경제의 최전선에서 기업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금융시장이 탄핵 충격을 이겨냈다고 해서 안심할 때인가.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시장의 안정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겠는가"라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또다시 도지고 있는 거시경제 운용 시스템의 궤도 이탈 현상도 심각한 문제다. '배드뱅크' 설립을 앞당기기로 하는 등 신용불량자 대책을 추가로 내놓은 것은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쳐도, "모럴 해저드를 야기할 조치는 내놓지 않을 것"이라던 다짐을 뒤집음으로써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임시투자세액 공제 제도처럼 말 그대로 '임시' 적용돼야 할 세금 특혜 제도를 일몰시한이 다가올 때마다 이런 저런 구실로 연장하더니,다시 올 연말까지로 만료일을 6개월 더 늦추기로 한 것 역시 온갖 배경 설명이 구차할 뿐이다. 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 나라를 움직여 가는 정치·사회 위기관리 체제의 부재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지난 12일 이후 이 나라는 한 마디로 '공권력 실종' 상태가 돼 버렸다. 정부 스스로 밤마다 주요 도로 한복판을 점거한 채 연일 벌이고 있는 '촛불시위'를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하고서도 '해산 경고'만 거듭할 뿐 사실상 방치하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명백한 행정력의 포기이자 공권력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정치·사회적 불안이 만연하고 '불법'이 판을 치는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뒷북치기와 '땜질'로 경제정책 기조를 약화시키면서 금융시장이 언제까지나 '의연'하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금융시장이 탄핵 직후의 심리적 공황(恐慌)에서 빠르게 벗어났다고 해서 '위기 극복'을 자축하기에는 내부에서 곪고 있는 모순과 불안 요소들이 너무나 심각해 보인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