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규모가 2조원에도 못미쳐 전년대비 63.4%나 감소했다고 한다.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LG카드 사태 등 예기치 못한 변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는 하나 참으로 초라한 성적표다. 은행 경영실적 악화에는 부실채권을 털어내기 위해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점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은행의 영업능력을 나타내주는 충당금적립전 이익은 전년보다 12.9% 증가한 사실에서 충당금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국민은행을 비롯 조흥 제일 외환은행 등이 적자를 면치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충당금을 대규모로 쌓아야 한다는 것은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를 나타내주는 현상에 다름아니다. 실제 지난해 발생한 신규부실채권은 35조원을 넘어 전년의 2배 수준을 웃돌았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은행들이 관리기법 선진화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도 후진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지난해에는 SK네트웍스와 LG카드 사태라는 대형 부실요인이 있었던데다 극심한 내수불황 탓에 가계 및 신용카드 부실까지 심화되는 등 외부환경이 대단히 척박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경제여건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부실채권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은행 경영을 위협하는 요인이 앞으로도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상당수 은행들은 카드사 부실이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카드사를 단순합병함으로써 엄청난 잠재부실 요인을 떠안는 셈이 됐다. 사회적 현안으로 부상한 4백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 문제도 재무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시한폭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내수불황의 영향으로 향후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하기조차 힘든 형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은행들은 한미은행 인수계획을 발표한 씨티 등 세계적 금융그룹과 사활을 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낙후된 금융기법과 비효율적 경영구조를 그대로 가져가서는 더이상 살아남기조차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경영기법 개발에 매진하기는커녕 합병을 성사시키고도 인력구조조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의 초라한 경영성적표는 은행업계가 왜 리스크관리 선진화 및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지 다시한번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