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사실상 미군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해 추가 파병지 변경 방침을 확정했음에도 이런 사실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라크 현지 소식통들은 한국 정부가 파병지 변경 배경을 제대로 홍보하지 않으면 이라크인들의 한국에 대한 신뢰 추락과 함께 반한(反韓) 감정이 조성되는 등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병지 변경 이유 오해 팽배= AP, AFP 등 외신들은 19일 일제히 한국이 파병지를 바꾸기로 한 이유로 키르쿠크의 치안상황을 들면서 한국은 더 안전한(safer 또는 more secure) 곳을 찾을 때까지 파병계획을 연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파병지 변경이유는 아랍계 언론에 고스란히 전달돼 그대로 전파를 탔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도 그런 취지로 보도했다. 이는 국방부가 이날 오전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양국은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지역으로 선정됐던 키르쿠크주의 치안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파병지역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했어야 할 국방부가 실상을 오도한 것이라는 의견이 군내에서 조차 나오고 있다. ◆파병지 변경 이유는 `미측의 합의 파기'가 돼야= 정부가 파병지를 변경키로한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측이 합의를 깼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설명됐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일각에선 키르쿠크의 치안이 악화돼 파병지를 바꾸기로 했다는 발표는 파병 장병이나 가족을 안심시킬 수는 있겠지만 외교적으로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있는 참으로 잘못된 설명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 해 12월 키르쿠크를 한국군의 독자 관할에 두기로 합의했으나 이 합의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공동주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미측이 입장을 번복한 이유는 평화재건 지원이란 파병목적을 내세워 저항세력에대한 공세적 소탕작전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한국군의 독자주둔을 인정할경우 키르쿠크 지역이 저항세력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것이고 내면에 자리한 실제 이유는 이라크 북부의 최대유전지대인 키르쿠크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얻고 있다. 즉,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등 경제적인 측면 외에 북부 지역에서 미국의 우호세력으로 급부상한 쿠르드족을 이라크내 아랍부족의 견제세력으로 키우려면 키르쿠크에 대한 군사적인 통제를 놓아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지의 한 소식통은 "미국은 애초부터 키르쿠크를 한국에 넘겨줄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독자주둔을 보장해 주는 척하다 나중에 공동주둔을요구하면 한국이 수용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이 독자 주둔을 인정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은 한국내 파병반대 여론을 고려해 한국정부의 파병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협상전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미측이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공동주둔 카드를 눈치채지 못했고, 미국은 한국이 평화재건과 독자주둔 원칙을 지키면서 공동주둔 및 공세작전참가 요청에 끝까지 `노(NO)'라고 얘기할 줄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방부는 결과적으로 협상결과를 발표하면서 미국측 심기를 살피는 데급급한 나머지 미국이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불가피하게 파병지를 변경할 수 밖에없다는 큰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키르쿠크 주민 `한국 불신' 해소책 시급= 국방부는 파병지 변경 과정에서 군사적인 측면만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면 큰오산이라는 게 이라크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들의 지적이다. 이라크 사정에 밝은 전직 언론인인 아사드 무라드씨는 "이제 한국은 새로운 파병지를 선정하는 문제 이상으로 파병지로 상당기간 거론됐던 키르쿠크 주민들의 오해를 푸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재건지원 약속에 들떠있던 키르쿠크 사람들은 이제 한국에 좋지않은 감정을 갖게 됐다"며 "미국의 요구로 한국이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돼 파병지를 변경키로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파병지 변경 경위를 자세히 모르는 이라크인들은 "한국은 이라크를 돕기보다는 자신들의 안전만 생각하는 겁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거나 "한국은 신뢰할수 없다"는 등 모든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투의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그동안 남발된 공약을 뒷감당하는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는 그동안 파병준비가 겉돌고 있는 사실도 모른 채 친한화(親韓化) 작업의일환으로 압둘라만 무스타파 주지사 등 키르쿠크 지도자들을 대거 초청해 수 많은재건지원 사업을 약속해 놓은 상태다. 주 이라크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참으로 걱정이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