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발발 1주년을 맞는 중동.아랍권은 질서재편의 격랑에 휘말려있다. 역내 국가들은 한결같이 내부의 도전과 외부로부터의 개혁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패권주의 야욕을 제거하면 안정이 도래할 것이라던기대는 크게 빗나가고 있다. 역내에서 가장 위험한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중동 각국에서 민중의 개혁요구가 갈수록 과감해지고, 미국의 간섭은 이제 종교에 버금가는절대 위력으로 느껴지고 있다. 내부의 도전은 새로운 지역 질서재편 움직임과 각국이 직면한 민주개혁 요구를의미한다. 외부의 압력은 미국과 유럽이 추진하는 중동 민주화 구상으로, `테러의진원'인 중동의 정치 민주화와 경제 자유화를 통해 테러리즘의 근원을 뿌리뽑겠다는발상이다. 실제로 아랍 21개국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포함하는 범아랍기구인 아랍연맹은 창설 60년을 앞두고 전면 개혁과 발전적 해체의 기로에 놓여있다. 아랍연맹은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심각한 분열상을 노출해 전쟁을 막지 못했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무기력에 빠져있다. 리비아가 아랍연맹과 협력을 사실상 중단했고, 쿠웨이트와 카타르 등 걸프지역친미 국가들이 연맹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전면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아랍연맹 내발언권도 전통적인 주축국인 이집트와 사우디, 요르단 등에서 걸프 국가들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최근 열린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기대했던 실질적 개혁에합의하지 못하고 과제를 내년으로 떠넘겼다. 이라크 전쟁은 중동 및 아랍권에 질서 재편의 거센 후폭풍을 몰고왔다. 쿠웨이트와 카타르, 바레인은 미국으로부터 정권안보를 보장받는 대신 연합군에 이라크 침공 발판을 제공해줬다. 이들은 미국이 새로 짜는 지역 안보체제에서 최혜국 대우를누리게 됐다. 당연히 이들의 정치적 위상도 급부상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그동안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역내 중심국 역할을 해온 사우디의 영향력이 현저히 퇴조하고 있다. 걸프지역 미군 사령부가 사우디에서 카타르로옮겨간 게 그 반증이다. 카타르는 모범적인 민주개혁과 알-자지라 방송과 같은 막강한 전파력을 이용해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미 해군 5함대 사령부가 있는 바레인은 자체적인 민주화 과정에 놓여있고, 쿠웨이트는 안보위협이 제거된 뒤 제2의 경제도약을 노리고 있다. 예멘은 미국의 대(對)테러전 전초기지 역할을 자처하며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스스로 들어갔고, 역내 다른 국가들에게도 같은 선택을 권유하고 있다. 반면 미국으로부터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된 시리아는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시종일관 사담 후세인 정권과 연대를 고수했다. 이 때문에 전쟁 종료와 함께 미국의군사위협과 경제제재에 시달리고 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재개해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피하려 하고 있다. 사우디와 이집트, 시리아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大)중동구상'의 직접 사정권에 들어있다. 사우디는 2001년 9.11 테러사건 후 역내 대 테러 작전의 최전선으로 떠올랐다. 당시 테러공격에 가담한 범인들의 대부분이 사우디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테러 온상'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사우디 정부는 이슬람 급진세력에 대한 소탕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한편 사상 최초의 지방선거 실시 등 점진적 정치개혁안을 내걸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 최초의독립적인 인권감시기구도 출범했다. 그러나 지식인과 반정부 세력은 인권 신장을 포함해 과감하고 실질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이 뒤에서 후원하고 있어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이집트도 미국으로부터 줄곧 정치 민주화와 인권 신장 압력을 받아왔다. 이집트 는 미국의 중동민주화 구상 주표적으로 지목돼 있다. 내년도에 4차 연임이 끝나는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아들에게 대권을 승계할 것인지, 5차 연임을 노릴 것인지가 국내외의 최대 관심사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대중동 구상'에 대한 아랍권의반대를 주도하고 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지난해 12월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다. 리비아는 이에 앞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항공기 폭파사건 배상에 합의하고,미국 의회 대표단과 정부 관리의 방문을 허용하는 등 변화의 발걸음이 가장 빠르다. 현 추세대로라면 리비아와 미국간 관계 정상화는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리비아는 이스라엘과도 비공식 접촉을 통해 꾸준히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란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서방과 관계 정상화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핵개발 문제로 더욱 꼬여가고 있다. 최근에는 개혁파가 보이콧한 총선에서 보수파가 압승, 의회를 다시 장악하면서정책의 경직화, 보수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사찰 문제로대립이 심화하면서 새로운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가 다수파인 이라크의 정치상황과도 긴밀히 연관돼 있어 이란 문제의 해법이 간단치 않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