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 육성정책을 정부 보조금 지급행위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새로운 통상마찰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 측의 인식이 그러하다면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 프로젝트 전체가 그런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 의회에 제출된 '2004년도 무역정책 의제 및 2003년 연례보고서'에서 USTR는 구체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사업을 적시하면서 한국 정부가 향후 5년간 8억3천1백만달러(1조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은 정부보조금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조치라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미국 반도체 산업이 부당하게 피해를 본다는 얘기다. 아마도 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 시비의 연장선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이는 미국측의 이런 주장은 물론 잘못된 것이다. 하이닉스 문제만 해도 논리적으로 따져봐야 할 대목이 적지않지만 이번 주장은 그보다 더한 것 같다. 정부의 정책의지 자체를 보조금으로 연결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연구개발비를 무조건 부당한 보조금으로 단정한 것 역시 그동안의 국제규범에 비춰보더라도 말이 안된다. 그런 식이라면 미국을 포함해 그 어느 나라도 보조금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자기부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로서는 신경이 안쓰일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불필요한 오해나 시비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접근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되돌아 볼 점도 없지 않다. 연구개발이 핵심인 차세대 성장동력 프로젝트를 굳이 '10대 산업'으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하면 경쟁상대국에게 특정산업에 '타기팅'한다는 경계감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정부 역할이나 지원 성격을 분명히 천명할 필요도 있다. 연구개발,인력양성,국제협력,인프라가 정부지원의 핵심이며,특히 연구개발은 시장경쟁에 바로 직결되는 기업의 영역이 아니라 경쟁 전(前) 단계에 해당하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USTR가 지적한 휴대인터넷 등 차세대 통신서비스 표준문제만 해도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정부의 세련된 산업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자칫 잘못하면 기업 스스로의 연구개발과 시장개척에 되레 큰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