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리빙뱅크'인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함으로써 국내 금융기관들은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적자생존의 냉엄한 원칙이 적용되는 무한 경쟁의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후진적인 관치와 금융 관행에 길들어 있는 은행은 물론 보험, 증권, 카드등 국내 금융계 전반이 상품 개발, 위험 관리 등의 선진기법을 조속히 도입해야 하고 정부도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무튼 국내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하는 외국 자본과 이에 맞서려는 토종 자본이한판 대결을 벌이는 `제2의 빅뱅'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금융산업 선진화 기대 커 금융계 전문가들은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는 한국의 금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전문가들은 ▲치열한 상호 경쟁으로 금융기관들의 상품 개발, 위험 관리 등의 수준이 개선되고 ▲전반적으로 고객 서비스 향상의 계기가 되는 데다 ▲금융 관련 제도나 기준 등이 선진화될 수있다는 점을 기대했다. 또 한국의 금융 체제가 흔들리면 씨티은행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전반적인 금융 안정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외국 투자펀드는 은행 경영에 대한 경험이 없어한국 금융산업 발전에 전혀 도움을 못주는 데다 주가가 오르면 팔고 나갈 가능성이높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외국의 금융자본은 선진국 수준의 금융 감독과 기준, 관행을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일부 금융기관이 피나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부담은 있으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금융 서비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외 은행간 전면전 돌입 그동안 적어도 국내 무대에서는 국내 은행들에 맞설 제대로 된 적수가 없었다. 그러나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단기 이익만 노리는 투자펀드와 달리 장기적 안목과 실력을 겸비한 외국 상업은행이 국내 은행의 경영권을 완전 인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씨티은행+한미은행'이라는 짝짓기가 갖는 파괴력은 대단할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은 물론 보험, 증권, 카드를 아우르는 `고품질' 선진 종합금융상품과 기법,37년간의 국내 영업을 통해 축적한 영업 노하우, 여기에 전국 225곳에 걸친 한미은행 영업망이 결합되면 국내 금융시장에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씨티은행은 서울, 분당, 부산의 12개 지점만으로 이미 수익성 지표가 2002년 기준 총자산수익률(ROA) 0.79%, 자기자본순이익률(ROE) 13.46%, 순이자마진(NIM) 2.78%로 웬만한 국내 시중은행에 맞먹는 수익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외 은행간에 갈수록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상위 고소득 예금자 시장에서 `한수 위'인 씨티은행이 우위를 점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씨티은행이 지닌 최대 강점이 바로 고소득층에 특화된 프라이빗 뱅킹(PB)과 자산 운용 부문으로 한미은행 영업망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파고든다면국내 은행들은 수성에 상당한 어려움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과의 벽이 허물어진 보험, 증권, 카드업종 역시 `씨티 태풍'의 영향권에서살아 남기 위한 경쟁에 내몰릴 것으로 우려된다. 소매금융 뿐 아니라 기업금융도 국내 은행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씨티은행의 공세에 노출돼 있다. 씨티은행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다. 뉴브리지 캐피털이 대주주인 제일은행과 론스타가 인수한 외환은행도 앞으로 2∼3년 안에 한미은행 방식대로 대주주간 `손바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국내외 은행간의 생존 경쟁은 갈수록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은행 대응책 모색 국내 시중은행들은 "올 것이 왔을 뿐"이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이미 비상령이 발동된 상태다. 이미 외국 은행의 입성에 대비해 다양한 선진 금융상품과 기법을 속속 도입하기는 했지만 한미은행의 영업망을 등에 업은 씨티은행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에는 준비가 덜 됐다는 게 대다수 은행 소매금융 담당자들의 얘기다. 각 시중은행은 이에 따라 고소득층을 겨냥한 PB 영업 중심의 상품 개발과 점포확장, 전문 인력 보강 등 벌써부터 다각도의 대응책 마련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있다. 현재 시중은행들의 PB 영업 점포는 하나은행이 120곳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 은행들은 대부분 10곳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은행 윤종규 부행장은 "씨티은행의 진출에 긴장하는 것은 어느 은행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나름대로 대응 체제를 갖춰 왔고필요에 따라 보완도 할 예정이어서 크게 우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미 국내 직원들의 전문성과 상담 능력이 크게 향상돼 있고 상품도 결고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은행권 중에서 가장 긴장하는 곳은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등 후발 은행들. 씨티은행이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고객군 비중이 높아 직접 맞대결이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소매금융 체제 전반을 선진 은행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 상태"라고 밝히고 "공정한 경쟁을 펼친다면 고소득층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할 만한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M&A 후폭풍 몰아친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면 1∼2년 안으로 은행권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지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며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므로 기초체력이 튼튼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퇴출의 쓰라린 고배와 함께 인수.합병(M&A)의 먹이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이는 씨티은행의 진출에 맞서 몸집을 더 불릴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국민, 우리,신한, 하나 등 국내 `빅4' 은행의 이해와도 맞물려 은행권 전체를 다시 한 번 인수.합병의 회오리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 총자산 100조원이 넘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는 있지만 막강한 자본력을 등에업고 있는 씨티은행과의 경쟁에서 버티려면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는 게 이들 은행의 공통된 상황 인식이다. 총자산 220조원의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김정태 행장은 "씨티은행 같은해외 선진 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할 경우 국민은행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분석하고 "국내 은행도 추가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더 키우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중 대규모 지분 매각이 본격화될 우리금융지주, 뉴브리지캐피탈이 주인 찾기에 나선 제일은행,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는 외환은행이 M&A 태풍의 `핵'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이러한 M&A 경쟁에는 국내 은행은 물론 한국시장에 이미 들어온 HSBC,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도 씨티은행을 의식해 사활을 걸고 뛰어들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울러 국민은행을 포함한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미 매물로 나온 한투.대투증권과 LG증권, LG카드 인수.합병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공산이 커졌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금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