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누구든지 아무 제약을 받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버시대에 산다. 사이버 공간속의 네티즌은 개성 자율성 다양성 및 대중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탈이념적 사상, 즉 포스트모더니즘과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이들 네티즌은 공동의 관심사가 등장하면 사이버상에서 쉽게 뜻을 모아 정치사회 현안에 참여해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민중의 힘' 시대를 열었다. 2002년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 동두천 미군의 여중생 압사 항거 때의 '시민의 힘', 그리고 대선 때의 '노사모'등이 그 사례다. 사이버시대 민중의 힘은 결코 권위주의는 물론 그 산물인 40년 지역당 체제, 그리고 차떼기, 책떼기 등 부패정치 틀을 수용하지 않는다. 이들 사이버세대를 등에 업고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집단 역시 기성정치틀을 파괴하고 개혁하는데 이해를 같이한다. 그리하여 민중의 힘은 기성정치에 대한 저항조류와 함께 역동적인 전자정치(Telepolitics)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열린우리당의 재빠른 흐름타기가 그 예이다. 그러나 한 시대의 지배사조나 정치권력 인기는 결코 영속할 수 없다. 그 동안 우리 정치는 이념도 정책도 뚜렷하지 않은 무정책으로 이어져 왔다. 다양성을 부인한 분단과 냉전시대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정부형태가 대통령제인데도 내각제처럼 행정부에도 법률안제안권과 거부권을 동시에 부여한 탓도 적지 않다. 그래서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배타적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입안할 수 있었고 지배적 기술관료집단을 형성해 정치권력을 행정권력으로부터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새정치개혁의 틀에는 법률안제안권과 동의안은 국회에만 부여하고 제안법률에 제안의원의 이름을 붙이는 제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또 실효성 있는 정책구상을 위해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안된 국회내에 중립적이고 탁월한 '두뇌집단(Think-Tank)'기구를 둬야 한다. 물론 정책정치는 이런 제도의 도입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정치인들 스스로의 의식개혁이 필수적이다. 투철한 시대정신과 갈등조정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이름이 알려지고 잘 생긴 방송인과 연예인 등을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같은 이미지추구선거가 심화되는 한,결국 또 다른 정치과잉과 과소정책시대가 되풀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국무위원 등 개혁을 추진할 행정부 등의 구성원이 주류 기득권층의 보이지 않는 여론조작에 따라 선발될 경우,개혁은 물론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효율적 정책운용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배적 기술관료집단에 대해서는 규칙적이고 광범한 기관간 민관간 교류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J 루소 이후 프랑스의 계몽사상과 혁명전통에 의하면 전자정치시대에도 특수이익의 표출은 자유로워야 하나 공익내지 국가의지와 조화돼야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갈등조정력을 높여야 한다. 불행히도 권위주의와 지역당 체제로는 갈등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미 충분하게 논의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하고 정당의 그 실효성 보장이 절실하다. J 슘페터가 제의한 자유민주주의 전통에서 특수이익을 공익내지 국가의지와 조화시켜야 할 가장 중요한 부문은 경제부문이다. 생산과 분배를 둘러싸고 야기되는 갈등이 다른 어떤 부문보다도 자주 일어나 국가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조정을 구실로 지배적 관료집단권력은 공고화됐다. 현대정치행정의 갈등조정은 사전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국회는 직능집단 비율을 높이고 설득과 조화력을 발휘해야 한다. 끝으로 막강한 정치력의 뿌리인 정보화시대의 주역과 다원화시대 시민단체도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개혁철학 및 열린 정책구현을 위한 정책, 학습, 제도 및 관리능력을 포괄하는 국가능력에 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충남대 명예교수 chchon@kornet.net